상계동성당 게시판

홍신부님 강론(7월 19일)

인쇄

김현경

2002-07-21 ㅣ No.4419

애 키우는게 힘들다고 많이들 얘기를 하십니다.

공부좀 잘해라,착하게 살아라-- 아무리 말을 해도 애가 안듣는단 말이죠.

그래서 힘이 든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것은 왜일까요.

왜 주부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속상해하고 힘들어할까.

왜 힘든지 애 한테서 문제를 찾지 말고 여러분들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본당 신부들이 모이면 신자들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얘기를 합니다.

신자들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몰라---- 라고 말이죠.

여기서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왜 이렇게 신자들이 안 바뀔까>입니다.

속에 있는 이유는

<왜 내 맘대로 안되는 거야---->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키울때도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애가 왜 이렇게 안 바뀌는거야.

 공부는 왜 지지리 못해. 왜 성질은 이래>

안의 이유는

<왜 내 마음대로 이렇게 되라면 이렇게 되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해야 되는데

 이리 가라고 하면 저리로 튀고 저리 가라고 하면 이리로 튀고 그러는거야------>

이것이지요.

 

그런데 그 생각이 자식한테만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한테도 이렇게 똑같이 요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남편상은 여기야---- 여기 있어-----!!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와있나요? 안 있거든요.

옆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막 속상해합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남편이 그 자리로 딱 오면 그때만 편해요.

좀 지나면 남편은 그 자리 말고 또 다른 곳에 있거든요.

방 청소할때 남편보고 "일어나, 일어나----"하는데

남편이 안 일어나고 뭉기적거리는 경우가 있지요.

그럴때,남편이 안 움직이고 개기고 있을때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남편을 보면서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문제입니다.

’일어나기 싫어하는구나...’이렇게 생각하고

"그럼 내가 딴데 먼저 하고 올테니까 거기서 조금만 더 보고 있어--"이게 안되고

꼭 거기를 치워야지만 된단 말이죠.

딴데는 몰라도 요기는 꼭 하고 가야돼---

남편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거기를 굳이 밀어대는 겁니다. 굳이.

어떤때는 방석째로 막 끌어내면서까지 말이지요.

반드시 이 사람은 여기 있어야만 하고

이 일은 이렇게 되야지만 돼!  라는 이 생각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듭니다.

거기서 손을 놓기가 참 어렵습니다.

 

본당신부들도 본당사목하면서

’내가 사목하는 본당은 이래야 돼!’하는 겁니다.

근데 거기서 벗어나면 용서가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거지로 막 끌어대는데 그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본당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지요.

바꾼다는게 참 어렵습니다.

근데 잘 안 바뀌는 것에 대해서 수용을 하고

’아,이렇게 세상살이가 바뀌는게 쉽지 않구나----’ 그러면 괜챦은데

죽어라 용을 쓰면서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꿔야돼!’ 이러면 그때부터 힘들어집니다.

 

’이것은 이쪽으로 가야지만 돼-----!’

이런 마음을 두고 ’집착’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고착’이라고 하지요. 붙어가지고 안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다른데 갔다가 다시 오면 되는데,

다른데로 가지를 못하고 거기 매달려 있는것, 이게 집착인 겁니다.

이런 집착을 가지고 일을 하면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얻는 것이 있어도 그렇게 큰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집착을 놓고 일을 했을때가 더 결과가 좋을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갖고 있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왜 힘든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에서 손을 떼면 더 망가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을때 집착에서 손을 못 놓습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느님께 다 맡기라고 하는 이유가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손을 떼면 불안할지도 모르니까

하느님께 맡기면 그분이 해결해주실거다--- 라는 믿음만 있으면

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집착이 강한 분들에게는 기도를 하라는 권유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마태복음 처음, 족보 이야기를 했었지요.

오늘은 1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요셉성인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요셉 성인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고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아기를 돌봐라-- 하니까 요셉성인이 그대로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요셉 성인의 행적을 보면, 기록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 이분이 참 집착이 없는 분이었구나--’하는 느낌이 듭니다.

요셉 성인이 화를 냈다는 얘기가 없어요.

마음에 분노가 많은 사람들은 집착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요셉성인은 굉장히 말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요셉 성인이 무슨 말을 했다--라는 기록이 없지요.

그런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외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내 마음의 힘을 키우는 방법인가?

그건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해야지만 합니다.

요셉 성인은 밖으로 말을 안하고 내적으로 말을 많이 한 분이었습니다.

구약성서 시편을 보면, 하느님 찬미하리다-- 하는 그런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안의 절절한 마음들을 하느님께 다 바치는 그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구약성서의 어떤 부분을 보면 읽기 민망할 정도의 글도 많이 나옵니다.

근데 그런 글들이 다 하느님께 드린 기도인 것입니다.

자기들 안에 있는 어둡고 추한 부분까지 다 하느님께 드러내는 그런 기도, 고백이

바로 구약성서입니다.

요셉 성인도 그런 기도를 하며 사신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숨김이 없이 다 드러내고 기도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분들이 집착이 적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영성가들이 기도 하는 삶이 좋은 이유를 다섯가지를 들었습니다.

기도하고 사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좋은 결과, 다섯가지를 든 것이지요.

1.자기 감정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고 분노나 좌절에서 빨리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2.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됩니다.

3.외로움이 많이 줄어듭니다.

4.죽음이나 병, 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5.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내 욕구보다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왜 기도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우선, 기도는 습관입니다.

기도는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해성사를 보실때 습관적으로 기도를 했다-- 고 고백을 합니다.

저는 오히려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분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밥 먹는데 그냥 밥 먹는 것하고,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밥 먹는 것하고 어느쪽이 더 예뻐보입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어느쪽이 예쁠까요?

습관적이라도 기도하고 먹는 사람이 훨씬 보기가 좋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딱 틀에 잡혀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문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입에서 그냥 나와야 합니다.

기도가 내 몸과 입에 배어있어야만 이게 정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분들에겐 기도가 어렵지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기도가 습관이 안된 분들입니다.

그동안 냉담을 했으니까 이제부터 기도를 해야지---

아침기도는 몇시부터 몇시까지----

이게 잘 안된단 말이지요.

기도는 습관적으로 생각 나는 때마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기도같지가 않아--

시간 정해놓고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놓고 촛불 켜 놓고 젯상 차리듯 차려놓고 해야지

이게 기도야---

거기에 매달리는 분들이 대개 기도가 어렵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시작하면 오래 못 갑니다.

어렵게 기도를 배우면 질려합니다.

오래 못 갑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세는, 쉽게 쉬운 자세로 해야 하고

그리고 그냥 틈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기분 날때는 들여다보고 기분 안 좋을땐 옆에다 깔아놓고 베개 삼아 베기도 하고.

그러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두번째,

기도를 하루에 너무 많이 하면 좋지가 않습니다.

피정에 들어가면 수녀님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이제까지는 조금 했지만, 지금부터는 많이 하라고.

묵주기도도 하루에 15단씩 하고,

아침기도,저녁기도,밤기도, 어떤땐 새벽기도까지....

그럼 신자분들은 그 얘기를 들으시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게으르게 살아왔는지 알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자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으면 걱정이 됩니다.

..이게 3일을 못갈텐데..... 3일 지나면 강박에 빠질텐데....

그런 분들이 꼭 자책을 합니다.

기도원가서 무슨 기도 뭐 해야지, 뭐 해야지-- 계획을 이만큼 세워갖고와서

한 3일쯤 하다보면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안하던 기도를 하면 몸이 아파요. 무리하게 하니까.

한 사흘쯤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그 다음에 반드시 하는 생각.

’나는 믿음이 없어’

거기서 한발 더 나간 사람들은

’내가 마귀가 씌어서 그래--’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나같은 년 살아서 뭘해--’

그 순서대로 나갑니다.

주위사람이나 나 자신이 그런 자책을 하기 시작했을때

마음이 변해가는 단계들을 잘 보십시오. 꼭 그 순서대로 가요.

맨 마지막에 선택하는게

’난 구원받을 자격이 없어’

’하느님은 나만 미워해’

 

피정이나 기도모임에서 신자분들에게 왜 기도를 안 하냐고 야단을 치고

나가면 수도자들처럼 하루종일 기도하라고 강조하는 분들은

대개 강박증 환자들이 많습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럼 본인들은 그렇게 하느냐.

본인들 자신도 그렇게 못 사는 사람들이 남한테 강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찾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루에 내가 만약에

’난 하루에 기도를 한 시간 할 수 있어. 할수 있을 것 같애’ 그런 생각이 들거든

30분만 하십시오. 반만. 나머지 반은 그냥 노세요.

근데 그렇게 하루에 30분 하는 것이 일년 열두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아,조금 더해도 될 것 같애’하는 느낌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조금씩 더 늘려가는 겁니다. 조금씩.

그러지 않고 한꺼번에 많이 하게 되면

마음이 몸살을 앓기 시작합니다.

마음도 살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애가 힘들어해요.

힘들어하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이런 상태로 빠져들어갑니다.

그 상태에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기도가 기쁘지가 않아요.

대개 그런 분들이 고해 성사 볼때 이렇게 죄를 고백합니다.

"아침기도 안했어요,저녁기도 안했어요.

 묵주신공 하는데 두알을 빼먹었어요---"

그게 무슨 기도입니까. 자기 고문하는 것이지.

 

기도는 내가 하느님과 연애하는 것입니다.

첫사랑, 그 첫사랑의 상대를 처음 만나서 커피마실때 기분이 어땠는가.

그때 그 기분

기도할때 그 기분이 나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만 생각하면 다른게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성당에 비가 새건 밖에서 누가 떠들건 상관없이

하느님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그게 기도를 정말 잘하는 분입니다.

근데 앉아있는데

나는 기도하는데 저 여편네는 왜 저렇게 뽀시락거리고 앉아있는거야,

애새끼들은 왜 이렇게 떠들어------

이것은 내가 하느님한테 마음이 안 가 있는 겁니다. 겉도는 겁니다.

 

형식을 너무 많이 따지다보면

하느님과의 만남에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주 자유로운 자세로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때 얘기를 걸듯이

그렇게 하느님께 기도를 걸어보세요.

그것이 되는 분들이

내 자신에게 매여있던 마음이 점점 하느님께로 가게 됩니다.

그것이 집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22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