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대학 입시를 앞둔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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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9-26 ㅣ No.5868

 자연아,


엊그제 추석을 지나고 보니,

날씨가 확 달라졌구나.

새로 이사 온 집이 시원한 편이라서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너나 나나 힘겨웠던

너의 청소년기를 그래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구나.


지금은 

수시 준비로 앞뒤가릴 것 없이 바쁘겠구나.

내일 첫 실기시험을 봐야하니 말이다.

엄마의 조바심으로

너를 간섭하고 닦달했지만,

결국은 감당해야하는 것은 오롯이 너의 몫이로구나.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이제, 곧 수험생을 위한 54일 공동체기도를 시작하려고 한다.

엄마야, 비록 엉터리라도,

끊임없이 너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 기도한다만,

함께하는 기도의 힘은 너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너의 인생의 기로에서,

너를 염려하는 선험자로서,

좀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선택을 하기 바라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는 잔소리로 네게 전달되는 것은

엄마의 방법미숙이라 생각된다.


사람이 지나치게 욕심을 가지고 집착을 하면,

반드시 망하게 되고 스스로를 해치게 되더라.

이번 대학 입시를 통해서,

니가 기대했던 대로 혹은 그 반대로 결정이 날 수 있겠지만,

너의 커다란 인생의 흐름에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할 거야.


마지막으로,

항상 너를 바라보고, 염려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너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를 지키는 ‘영원한 분’을 느끼며,

어떠한 경우라도 용기를 잃지 않기 바란다.


엄마는 

매사에 똑똑하고, 성공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큰 기쁨과 감사를 느끼지만,

부족하고 실패할 때도

깊은 곳 사랑은 바뀜이 없음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사랑한다. 얘야,



2005년 9월 22일  점심 먹고 바로...



저도 잘하는 것 없으면서

늘 너만 잘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 대는

엄마로부터 

 

 

※ 이 글은 곧 시작 될 수험생을 위한 54일기도에 앞서, 고3인 우리 아이에게 쓴 것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교적을 용산으로 옮긴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남으로 해서, 지금은 평일에 미사를 거의 참례하지 못하고, 공동체 일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기도인데, 역시 54일 기도를 하는 중계동에  머리를 디밀었습니다. 28일부터 기도가 시작되는데, 27일에 봉헌문을 드리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이가 이 글을 읽더니, 꼭 와 닿는 곳이 있다면서, 펜을 급하게 찾네요.

저도 잘하는 것 없으면서

늘 너만 잘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 대는

엄마로부터‘ 랍니다.

굵은 줄 두 개와 Key Point 라 적습니다.

앞으로 잔소리가 시작되면, 보여주겠답니다.


공동체와 선이 닿는다는 것은, 평소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나와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순교자들의 삶에서도 보여 지듯이, 혼자의 힘으로 주님과 한결같은 소통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찌 어찌하여, 저는 선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중계동 공동체에서도 이 모임에 소외되고 있는 분(직장, 병상, 외적 냉담 등)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저는 용산성당에서 무지하게 소외되어 있습니다) 얼마만큼은 본인들의 탓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포용력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로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각자 주님의 기적을 겪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궁극의 목표가 꼭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들을 통해서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게 선이 되어주신, 요셉피나 자매와 전화로 확인하여주신,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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