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담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답변 글 역시 닉네임으로 표기되며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주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쇄

사랑과영혼 [59.86.232.*]

2008-02-22 ㅣ No.6352

 
   천주교로 오셨다니 반갑군요.
   천주교의 핵심은 성사생활입니다.
   성사생활의 핵심은 또한 성체성사입니다.
   님 또한 섞이는 고통과 쪼개어지고 갈라지는 주님의 수난을 나누는 것이니 희망을 더하십시오.
   성체성사는 성모신심으로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그 날, '이제라도 왔으니 됐다' 한 것은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하신 일곱마디 말씀중 두번째의 좌도의 고해성사에 따른
   '네가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오르리라'의 말씀과 통할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극도로 몰아가지 마십시오. 의외로 겉모습은 평온치만 그런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뵈옵는 희망으로 세수라던가, 주변을 정돈하는 즐거움을 누리듯
   연옥 영혼 닮은 마음도 얼마든지 현실을 쇄신하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몫으로 천국에 이르기 위한 성화 방법들을 정돈해 나가면 되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를 묻지 않고 다만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루치펠(빛의 천사)'의 명성을 잃코 피조물 주제에 하느님께 대적하여
   참패하여 지상으로 '사탄, 악마, 악령'의 이름으로 도피한 어둠의 세력에게 속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 땐 해당 기도를 달라고 마음을 열면 하느님께서 마땅히 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두를 사해주시는 '전대사'를 신성+인성의 사랑이 아닌 '인성' 편향의 '면죄부'로 오인 한다는 것은
   극히 잘못된 발상인 것입니다.
 
   용서의 참 뜻은 주님의 얼굴을 마주함입니다. 
   그러하기 위하여 우리는 '죄'와 '벌'에 대하여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위의 좌도처럼 자신의 고통을 마땅히 받을 벌이라 여기며 회개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하여 '죄'의 보속을 즐겨 바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옥 여정인 것입니다.
   즉 용서를 받았을까? 하면 자연스럽게 의심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것도 잘 활용하면 좋은 음식 재료가 되겠으나
   결과보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즉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은사 중심이 아닌, 열매 중심의 신앙생활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으면 이웃 안에서의 누구든 그 사람안의 하느님을 먼저 배알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상대의 영혼을 보고 재빨리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면 매우 우수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놀라운 치유와 함께 더욱 놀라운 지혜들을 쏟아주시기 때문인데
   이 또한 우리가 자주 어린이처럼 동네 어귀에서 노니닥 거리기 바빳기에
   하늘 아빠, 엄마께서 뒤늦게나마 더욱 챙겨주시는 은총인것입니다.
 
   신부님께 고해를 하며 떨쳐 버린 느낌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다는 것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서 제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러하니 더욱 예수님처럼 성체성사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도 성사생활의 천국문을 향하여 연옥 닮은 여정을 정화해 나가도록 하십시오.
 
   신부님을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하신 사람으로만 규정하지 마시고
   인간적인 신부님도 배려해 드리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평신자나 이방인을 자주 인간적으로만 판단하게 만들고 신부님을 너무 가까이 하려는
   유혹같은 것을 맞기도 할 것입니다. 이 또한 '너를 가꾸어 주시는 은총으로 받을 때' 그는 행복한 것입니다.
   더불어 식별력이라는 보너스도 더욱 깊이 얻게 될 것입니다.
 
   발표력이 있는 분들은 신부님의 생방송 엔터테인먼트의 주파수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왜 신부님들이 '너의 모든 자아를 주님께 의탁하면서' 그렇게 무념 무상의 기도를 올리시는지 보시고
   우리도 또한 비록 '녹화 방송'이지만 노래방의 노래 부르기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그 기도문을 녹취해 보는것도 좋을것입니다.
   그러면 루치아노 파바로티보다도 더욱 강력한 성령발로 무장되어
   누구나 하느님의 걸작품으로 '최후의 만찬', '베드로 대성당 천지 창조'등을 하느님의 종이자 친구로서
   그리고 또한 이 사순 때의 십자가 아래의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의 '삐에따'상도 조각한
   미켈란젤로처럼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자녀들에게도 '완전한 교육'인 것입니다.
 
   님은 지금 주님을 만나고 계십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잘 못 보고 계신듯합니다.
   우리가 자주 잘못된 것을 보아 왔기에 그럴때일수록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일것입니다.
   하느님 존재 자체를 믿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 했어야만 했던걸까?라고 자문하기 이전에
   사람도 보고 하느님의 신성도 만날 수 있도록 '성호경'을 정성껏, 자주, 그리고 당당하게 바치시기 바랍니다.
   세상 만민을 사랑하는 마음인데 무에가 걱정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믿고 닮고 따르는 그를 봄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왜 미안한 일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오늘 이순간부터 더욱 '나'라는 글자를 쓰지말고 '우리'로 '맴버교체' 해보십시오.
   님은 충분히 멋진 축구 감독도 될 것입니다.
 
   님의 믿음이 약해서 그런 분심이 드는 것이라기보다 님을 사랑하시기에 주님께서 도움 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지켜 보고 계신걸까? 하는것도 우리의 죄가 진홍색같이 붉을지라도 너의 회개를 기다리며
   함께해 주시는 분으로 마음을 조금만 더 열면 됩니다.
   하느님의 원초적인 사랑을 말씀하셨는데
   에로스의 하느님도 맞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앞서 말씀드린 루치펠이었던 사탄에게 속아서
   퇴폐, 음욕, 상업주의등으로 훔쳐간 것이지 에로스, 에피투미아, 아가페도 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온것입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악의 노예였던 유영철도 그 아내의 편지를 보며 성당을 찾은 고정원 할아버지가
   성세를 받은날 체포하셨고, 또한 분노에 의해 자살하려다 유영철을 용서한 고정원 할아버지의
   성령발을 통하여 놀라 지금은 '유'가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압박은 몸에 해롭습니다. 물론 너무 헤이해지는 것은 주변 이웃마저 해롭게 만듭니다.
   따라서 주님 보시기에 이쁜, 님이 생각하는 바른, 그런 사람이 되려면
   늘 기도하는 자세를 유지하면 되겠습니다.
   들숨 날숨을 평화롭게 잘하자는 이야기지요.
   들숨으로 내가 이루려는 자아의식을 주님몫으로 돌리고
   날숨으로 그것을 복음화로써 세상에 노래처럼 시처럼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반드시 봉사보다도 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결여된 봉사는 반드시 악의 장난으로 음욕이 깃들기 때문인것입니다.
   대충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대충형 인간이라 네츄럴하게 고백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규제 하심도 또한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선 언제나 우리를 영원한 행복의 결과로 초대하시고자
   그 과정을 통하여 성부와 성모님의 마음으로 축복의 과정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잠시 하느님 만난걸 후회한다고 왜 나만 다 이해해야 되고
   받아들여야 하는거냐고 입밖으로 꺼냈다구요?
   다음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침묵을 구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침묵 가운데 주님을 초대할 수 있도록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사람이 예수님으로도 오실지 모를 일인데 아무튼 사랑은 어려운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라고 한 모 가수는 그 자아에 속아 결국 자살을 하였잖습니까?
   그런 가수의 마력의 음색에 속는 여인들도 그 자체를 포용할 수 있는 성령을 초대한다는 것
   그것은 '자손 만대'의 축복이기에 최상의 투자인것입니다. 더욱 단순해지시기 바랍니다.
 
   일상안에서 '녹색순교'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사순 애긍에 있어 커다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새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니 정녕 '새것'이라 함은
   짧아도 좋은니 '저녁기도'를 통한 그날 하루의 성찰을 통하여
   언제나 오늘만을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도록 새로운 영혼과 육신을 하사받는
   '아침 기도'의 강생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점차적으로 결코 남을, 또한 나와 연약한 이웃또한 비교하지 않는 단단한 평화의 하루를 
   구축할 수 있는것입니다. 
 
   아무튼 그 다음날 잘못했다고 기도하고 후회하셨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성모님과 꼬치 꼬치 기도하듯 메모화 하여 보다 알찬 성사생활로 누리십시오.
   조만간 님의 경우는 프로패셔널한 성직자들의 신앙 고백 사이트등도 초대해 주실것입니다.
   그리하여 악마가 유혹할 때에도 그러한 악의 세력을 굶겨 죽일 수 있는 습관 쇄신과 함께
   혼란시 더욱 숨 고르기로 갈 수 있도록 꿋꿋한 신앙 여정 잇게 될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침묵을 잘 성찰하십시오.
 
   1. 혼란한 생각도 시끄러운 것입니다. 말과 행위뿐 아닌 그런것들도 침묵으로 내려놓으십시오.
       이 때에 내려놓으면 주님께서 수고하시어 재단(반석, 베드로)으로 이동시켜 주시겠으나
       점차적으로 님께서 직접 그리스도 제대위로 쌓아올릴 수 있을것입니다.
 
   2. 비로소 죽은 침묵이 살아있는 침묵으로 도착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을 바라보며
       거룩한 침묵으로 향하는 성사생활의 피치를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던 평화의 인사도 이 순간속에 집중하여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서없는 장황한 글이 오늘도 이어졌군요.
   저도 요즘 바쁜 가운데 장문의 글을 썻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만약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면
   주모경 1회로 보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63 2댓글보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