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가죽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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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나무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울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다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도종환님의 `부드러운 직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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