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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시바의 여성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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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94deofilo] 쪽지 캡슐

2000-03-11 ㅣ No.1418

오랜 만입니다. 약속대로 다시 여성학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물론 쉬운 글은 아닙니다만 두고 두고 씹어보면 맛있을 것입니다. 당장에는 딱딱하지만 말이지요. 그리고 여성학 아티클 해설편을 읽어보시면 사상적 배경도 다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지난 번 처럼 문순홍씨가 쓴 글입니다.

제목은 보시다시피 뫼비우스의 띠, 시바의 여성적 원리입니다.

 

"생태여성론은 대개 서구의 백인여성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는데, 예외가 있다. 그이가 반다나 시바이다. 그녀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악개발에 대항하는 캠페인에 자신의 생애를 걸었다. 이 전환점은 근대화기획이 인도의 자연과 여성에게 발전이 아니라 파괴와 저주인 악개발(Maldevelopment)이었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사실 ’발전’은 탈식민주의의 기획이었고, 서구 선진국의 자선이었다. 이 기획은 제3세계를 가난과 야만과 종속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구식 진보가 모두에게 통하리라는 가정이 깔려 있었고, 서구 근대화 과정이 그 모델로 설정되어 있었다.

 

 시바의 악개발 주장이 제기하는 물음은 서구가 근대화한 시대적 조건과 제3세계의 조건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근대화의 경제기획(성장모델)만 보도라도, 이윤을 목적으로 한 생산, 잉여 그리고 이에 터한 자본축적은 그 이면에 끊임없는 가난과 박탈의 창조를 동반하면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착취의 대상은 식민지(외부식민지-제3세계, 내부식민지-자연, 노동자, 여성, 농촌)라 불린다. 2차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신생독립국에 투하된 발전모델은 외부식민지의 부재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자원 및 노동집약 방식에 의거한 경제개발은 내부의 식민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사실 사회주의, 생태론 그리고 여성론의 결과물을 종합하려는 사회주의 생태여성론자들은 그 동안 노동, 여성 그리고 자연억압이 얽힌 지수함수를 풀고자 했다. 그 지수는 바로 비가시성인데, 이 비가시성은 내부식민지의 주된 특성이다. 현 근대화의 발전기획에서 내부식민지의 영역들은 화폐로 가치환산되어 지불되는 시장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 기획에서 생산과정은 가치창출 과정으로만 등치되어 그 이면의 노동소비과정이 드러나지 않고 노동자들의 잉여가치 창출이 비가시화된다. 생산과정과 자연과정의 순환적 연결성이 끊김으로써 생태변수들이 소비되는 과정이 비가시화되고, 여기서 창출되는 잉여가치들이 무시된다. 자유재(자정능력) 및 희소재(자원)로서의 자연은 경제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왔다(외부불경제). 또한 생산과 재생산을 이분화하고 여성을 재생산 영역에 위치지우는 사회에서 여성노동력은 항상 공식경제 외곽에 놓여 있어 비가시성을 특성으로 한다. 그래서 여성의 육아/가사노동, 가사노동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버린 환경보호활동은 현 시장경제에서 노동력이란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따라서 지불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임을 의미한다.

 

 시바는 이 비가시성들 중에서 특히 여성과 자연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까지 말한 근대화기획을 여성과 자연을 지배, 파괴하고, 폭력과 종속을 강요하고, 강탈.폐기하려는 서구 가부장제의 기획이라고 규정하고, 그 바탕에는 서구의 근대과학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근대과학 자체가 가부장제의 기획이기 때문이다. 발전이란 대명제와 더불어 수입된 근대과학은 보편성, 가치중립성,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객관적 주장들을 강조하는 방법논리로 모든 문화권의 과학적 신념들과 지식체계를 대체해 왔다. 이 과학은 상호연관된 다양한 세계에 대해 폭력적이며 파괴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세계는 동식물의 종다양성은 물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도 상실하였다.

 

 모노컬츄어(Monoculturue)는 농작물에만 해당되는 단일경작이 아니라 문화에도 해당되는 단일문화를 의미한다. 이 발전모델이 악개발인 이유는 이 다양성 파괴와 획일화에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대안은 발전모델과 과학에서 ’여성적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 가부장성이 지배하는 세계체제에 속하길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도전이며, 그 바탕인 서구과학을 전통적인 지혜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지적 도전이다.

 

 시바에게 여성적 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는 여성적 원리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설명한다. 여성적 원리를 여성(성)으로만 국한ㅅ키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곧 남성성을 포함한 생태적 원리로 전치되고, 포괄적인 생태원리로 기술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곧 여성(성)이 강조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생태원리로서의 여성적 원리에 대해 기술한 대목은 이렇다. ’프라크라티는 *창조성, 활동성, 생산성, *형태 및 형상의 다양성,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 사이의 연결성과 상호관련성, *인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의 연속성, *자연 속의 생명의 신성함이다.’ 또한 여성성으로 국한된 프라크라티는 ’자연은 샥티 즉, 우주의 이성적이고 창조적인 원리의 표현인데... 프라크라티는 남성적 원리(류샤)와 결합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게 된다’고 기술된다.

 

 이 여성적 원리에 터한 과학은 어떤 과학인가? 그 답은 전통적인 민간학문의 재발견, 그리고 신과학운동과 페미니스트 과학비판의 연속선상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또한 여성적 원리에 터한 대안 발전모델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으로 시바는 인도의 전통적 경제방식을 말한다. 식민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인도(제3세계)에서 경제행위는 교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계 그 자체를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어다. 이 생계에 초점을 맞춘 경제는 그 발전방향을 ’지속가능한 생존’에 두고있다. ’이 신자유주의의 세계경제권에서 과연 가능하겠는가’란 물음을 뒤로 한다면, 이 경제가 주는 함의는 분명 있다. 이것은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에서 자본주의 사화와는 다른 역전된 우선순위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전자가 재생산에 생산을 종속시킨다면, 현 자본주의사회는 바로 생산에 재생산을 종속시키고 있다. 이 맥락에서 리우회의의 합의물인 ’지속가능한 발전’은 소비에 대한 통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재의 소비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생산영역의 발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여전히 생산(경제성장)의 밑에 재생산 가능성(생태가치 존중)을 놓고 있다."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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