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급적이면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과 더불어 질병·고통·전쟁은 물론 죽음조차 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우리의 고통·절망·슬픔을 없이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삶을 허락해 달라고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방법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중단시키지 않으시고, 부활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예수의 역사는 모두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란 죽는 것으로 모두 끝난다고 생각한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통상적 신념이며 믿음입니다. 이 생각은 토마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토마스의 불신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과학적·합리적인 접근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생명과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의 방법은 세상의 악과 고통과 허물을 없애지 않으시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켜 놓으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방법을 예수 그리스도는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자국, 옆구리의 창자국은 제자들이 굳게 믿어왔던 그들의 역사이며, 생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께 또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무덤이 우리 인생과 역사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고 만지도록 하신 것은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 새로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