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잊어버린 미국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90세가 가까운 수사님께서 임종하시는 자리를
젊은 예비 수사님이 지키는데, 어느 날 예비수사가
노인수사님께 후회되는 일이 없으시냐고 여쭈었습니다.
사랑하던 소녀와 이별하고 수도원에 입회했는데
가끔 그 소녀를 생각하였으며, 그 여인을 사랑하고
키스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았더라면
그 사랑의 기쁨은 어떤 것이었을까...
분심한 적은 있었노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후회하신다는 뜻이냐고 다시 여쭙자,
노인수사님은
“내가 지금 죽으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육안으로 만나 뵙게 될 것인데,
하느님을 뵙는 순간의 기쁨과 감격은 이 세상에서
사람을 사랑하며 체험한 기쁨과 감격의 천배 만 배일 거야,
그러니 후회는 없어” 라고 말씀하시면서 눈을 감으시고 ,
영화는 끝이 납니다.
어떤 죽음이어야며 어떤 삶이어야 하나?
저는 이 질문에 답하는 수험생의 자세로
하느님을 곁에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하느님을 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았다 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사랑과 감동을 체험하면서 살았다는 뜻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방바닥의 장판을 뜯고,
장판 맡에 깔린 녹슨 온수파이프를 교체하던 때였습니다.
쇠도 녹이 슬어서 물이 새고 방바닥이 썩는데,
70년 가까운 내 뱃속의 내장은 어떻게 썩지도 않고,
오늘도 먹은 음식을 다 소화시키나...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하느님께서 주시고 키우시고 살리시는 생명에
그지없이 감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추억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지금 제 곁에 계십니다.
글/ 이인복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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