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21]

인쇄

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22 ㅣ No.960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은 훈련 때문에 집에 오래 내려 가 있지를 못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거의

보름이 지난 후에야 집에 잠시 다녀 갔었다. 자신의 동생이 대입 시험을 치루었

다. 아직 철민이는 그 사실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지윤의 학교

를 지망한 상태였다. 철민이 내려간 다음 날이 합격자 발표일이었다.

"서울서 혼자 사는게 편한가 보네? "

철민은 부모님과 서울 생활에 대해 완전 거짓말을 하고 난 다음 자기 방에서 혼

자 만의 시간을 즐길 때였다. 그런 철민에게 동생이 마음이 불안 했는지 오빠를

찾아 왔다.

"왜?"

"몸이 많이 좋아 졌다. 근데 왜 그리 시크멓게 탄거야. 너무 촌놈 같다."

"시비 걸지 마라."

"나 합격 할까?"

"그걸 왜 내게 묻냐? 니가 시험을 잘 봤으면 합격할 것이고 아니면 꽝이지 뭐."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너 참 쉽게 말한다."

"야이, 니가 언제 날 오빠로 취급해 준 적이 있냐?"

"아빠가 그러는데 내가 합격을 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에 자그마한 아파

트 하나 얻어 줄거래."

"뭐! 아들은 하숙하게 만들고 딸은 아파트에 살게 한다 말이야?"

"너 바보냐? 나 혼자 서울에 있으면 왜 아파트를 사냐. 너랑 같이 살게 하려고

아파트 얻는 것이지."

"엉?"

철민은 갑자기 불안함이 들었다. 자신이 야구 한다는 사실이 동생과 같이 살게

되면 바로 발각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나 합격하게 빌어라."

"안돼는데..."

"뭐가 안돼. 내가 너랑 같이 살게되면 조금 오빠 취급 해 줄게."

 

다음날 철민은 기뻐서 방방 뛰는 동생을 보고 한가지 걱정 거리를 가지게 되었

다.

 

"너 성적이 참 이상하다. 전부 비 제로야? 하여간 삼점 영 넘으면 잘 받은 것이

라 하니 별로 할 말은 없다만 에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좀 더 노력해라."

철민은 사일을 집에 있다가 성적표가 집에 도착한 다음날 서울로 올라갔다.

"소자 에이 받도록 공부 하기 위해서 서울로 당장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철민은 가슴이 아팠다.

 

철민은 서울로 올라 가자 마자 서운한 소식 한가지를 접했다. 동엽이가 입대하

는 날짜를 철민에게 알려 준 것이다. 동엽이는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사월이 시

작되면 잠시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고 병역의 의무를 지기 위해서 철민의 곁을 떠

날 것이다.

"흠, 한 학기 네 도움이 컸다."

"그래 임마. 드디어 우리 헤어지게 되는구나."

"하하, 그래. 나는 군대 갈 날까지 집에 내려가 아버지 일이나 도울련다. 집에

내려 오면 연락해라."

동엽은 바로 집에 내려갈 차비를 하는 중이다. 짐을 싸면서 철민과 말을 주고

받았다.

"이 방도 이제 작별을 해야 겠군."

철민은 야구 부원이 되면서 이 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 방을 사용했

던 사람이 떠날 준비를 하자 다소 섭섭했나 보다.

"왜 너 완전히 합숙소에서 생활 하려구?"

"아니, 너도 없는데 하숙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 그리고 울 동생이 서울 올라

올거야. 잘못하면 걔하고 같이 살아야 할 것 같다."

"혜지는 여자잖아. 같이 자취할거냐?"

"아니, 울 아버지가 아파트 하나 장만할거라 그러네."

"흠."

철민은 별 생각없이 말했다. 하지만 동엽이의 표정을 보자 자기가 잘못 말했다

는 것을 느꼈다. 동엽이의 집은 지금 작은 가게 하나 겨우 얻어서 가게에 딸린

방에서 식구 전부가 생계를 꾸려 가고 있는 중이었다. 자식 공부를 위해서 서울

이란 비싼 공간 안에서 아파트를 얻는 다는 것은 지금 동엽이의 처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 합숙소에서 살아야 하는데...걔하고 같이 살면 야구하는 거 금방 들통 날텐

데..."

철민이는 앞에 한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동엽이는 철민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

다. 약간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

"너 지윤이랑 친하잖아."

"갑자기 그 말을 왜 하는데?"

"지윤이 동생은 이제 고삼이잖아. 지윤이 동생이 올라 올때까지는 지윤이네 아

파트 방 하나 남잖아. 혜지가 일년 정도 지윤이 집에 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리고 둘은 같은 학교잖아."

"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집에 당장 연락해야 겠다."

"지윤이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이 아니고? 흠, 하기야 지윤이는 네 말을 거절한

적이 없지. 하지만 지윤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마라."

"무슨 말이야 새끼. 지윤이가 내 부탁 거절한 적 제법 돼. 그래 지윤이에게 먼

저 연락해 봐야 겠다."

 

철민은 동엽이의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들어 주었다.

"잘 살아라.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널 보게 될 때 내 기대대로 네가 성장해 있

기를 바란다."

"너 혼자 나이 든 척 하지마 임마. 하여간 잘 내려가라. 입대 하기전에 한번 찾

아 가마."

철민이는 훈련하느라 동엽이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늘 자기 곁에 있는 것으

로 믿었었다. 동엽이를 보내고 난 다음 알수 없이 밀려오는 큰 허전함으로 철민

이는 울적해 졌다.

동엽이를 보내고 난 다음 바로 지윤이가 보고 싶어 졌다. 아까 동엽이가 말한대

로 동생의 거처 문제를 상의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늘 자기 곁에

있는 것으로 믿었던 하나가 떠난 다음, 또 하나의 늘 자기 곁에 있는 것으로 느

껴지는 사람이 생각 났던 것이었는데 그게 지윤이었다. 철민이는 터미널에 있는

공중전화로 지윤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뭐하냐?"

"철민이니?"

"그래 나다."

"어디야?"

"서울이다."

"정말? 너 빨리 올라 왔다."

"그렇다."

"우리 만날까?"

"그 용건 때문에 전화 한거 아니다. 동엽이 집에 내려 갔다. 곧 군대 갈 거야."

"응? 동엽이가 군대 가? 이제 한 학년 마쳤는데."

"그렇다. 군대는 사월달에 가지만 오늘 짐싸들고 집에 내려갔다."

"서운하네."

"그게 서운한 말투냐. 나 여기 터미널이야. 동엽이 막 떠나 보내고 전화 하는

거다."

"남자라면 군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뭐. 누구만 빼고."

"지금 별로 농담하고 싶지 않다. 요즘 걔네 집 형편이 어렵잖아. 그것 때문에

일찍 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너 제법 철 든 소리 한다. 너 집에 바로 들어 갈거니?"

"왜?"

"이제 네 방이 허전해 보일 거 아냐. 우리 집에 오라구."

"니네 집 얘기하니까 할 말이 생각났다."

"뭔데?"

"너네 아파트에 방 하나 여유 있지?"

"응. 근데?"

"혜지가 서울 올라 올거잖아."

"아 맞다. 혜지 합격했니?"

"그러니까 서울 올라 오지 임마."

"야 잘됐다."

"뭐가 잘 돼."

"혜지 우리 학교 지원했잖아. 나랑 학교 같이 다니게 됐는데 잘됐지 그럼 안됐

냐."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혜지 너네 아파트에서 자취 시키면 안되냐?"

"응?"

"우리 부모님이 나랑 걔랑 같이 살라고 아파트 얻는다고 하잖아. 나 그러기 싫

거든. 우리집 형편에 서울에 아파트 얻는 것도 솔직히 부담되는 일이고... 딸래

미 혼자 하숙시키기도 뭐 하고..."

"나는 괜찮아."

"그래 너네 동생 서울 올라 올 때까지 일년만 부탁하자."

"우리 동생 올라 와도 뭐..."

"그래 너 사는 아파트 충분히 크다는 거 알어. 혜지랑 같이 사는 거 괜찮냐?"

"나야 뭐 적적하지 않으니 환영할 일이지."

"집에 말하지 않아도 되냐?"

"말해야 겠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알았다. 그러면 울 아버지께 그렇게 말한다?"

"응. 근데 너 오늘 우리집 안 올거냐?"

"응. 안 갈거다."

철민은 지윤이는 아직 자기 곁에 있다는 것이 확인 되었는지 지윤이를 찾아 가

지 않았다. 그리고 하숙집에 돌아 와 허전함을 느꼈다.

허전함을 느낄 땐 친구가 생각이 나고 외로울 땐 그리운 사람이 생각이 난다.

철민은 아직 외롭지는 않았나 보다. 아까 처럼 지윤이 생각을 했다. 다른 친구

도 있다는 자기 위안이었다.

 

철민은 혜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님에게 자기는 계속 하숙을 할 것

이라는 것과 혜지를 지윤의 집에 살게 하는 허락을 받아 냈다.

 

철민은 쓸쓸한 하숙방에서 겨울을 났다. 열심히 몸 만들기와 체력 훈련을 한 탓

에 투수가 되기 위한 기술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이월달이 되어서 철민은 하숙집 방을 뺐다. 그리고 합숙소에서 생활 할 각오

를 하고 작은 자취방 하나를 얻었다. 거기에 일반 학생일 때의 짐들을 옮기고선

합숙소로 들어 왔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철민이는 따뜻한 날을 잡아 남의

것이나따나 글러브를 끼어 보게 되고 공을 잡아 보았다.

"인표는 얘 공 좀 받아 보고 석규는 속도계 가져 와라."

투수 코치가 철민에게 공을 던져 보게 했다. 철민은 아직 공 던지는 연습을 한

적이 없었다. 기술도 하나 배운게 없고 공을 컨트롤 하는 법도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대뜸 투수 코치가 철민에게 공을 던지게 했다. 철민이 훈련 한 것이라고

는 체력 훈련 뿐이었다.

철민은 멋있는 폼을 하고 공을 던졌다.

투수 코치가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서 있던 이 학교의 에이스 투수인 사학년 민

태라는 학생에게 물었다.

"하체는 그런데로 받쳐 주는 것 같지?"

"그렇네요."

"워낙 기본이 없어 투구폼에 나쁜 버릇이 든 것도 없을테니 투구 폼 잡아 주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저런 폼에서 정말 140 이상이 나왔다는게 믿어 지지 않네요."

"그래. 석규야 이제 스피드 한 번 재 봐라."

투수 코치는 그렇게 말하고 철민에게 다시 한 번 던지게 했다.

철민은 속도를 잰다는 말에 더 힘껏 공을 던졌다.

"얼마 나왔냐?"

"네. 136키로미터 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무도 실망스런 표정 짓지 않았으나 철민이는 실망하는 표정

이 역력했다. 전혀 훈련을 받지 않았을 때도 140 이상 던진 적이 있는데, 육개월

이 넘도록 고생을 하고 공의 빠르기가 오히려 줄었다는 것 때문이다.

투수 코치는 다시 공을 한번 더 던져 보라고 했다. 철민은 아까 보다 더 힘껏

던졌다. 공은 볼이었지만 포수가 잡지 못할 정도로 빗나가진 않았다.

"야, 김철민 어깨에 너무 힘 주지 마. 이런 날 잘못하면 근육 늘어 져."

철민이가 무리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깨가 뻐근했다.

"135킬로 미터 나왔습니다."

"괜찮지?"

투수 코치는 만족스런 표정이었으나 철민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추위에 체력 훈련만 받았던 완전 초짜가 저 정도 공 빠르기라면...제대

로 훈련을 받고 정식 투수가 되면 진짜 괴물이 되겠는데요."

에이스인 민태는 투수코치의 말을 받으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체력도 괜찮은 거 같고, 올 봄 부터는 정식으로 투수 훈련을 시켜야 겠어. 김

철민 그만 던지고 들어 가라."

철민은 툴툴 거리면서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 갔다. 감독이 추켜 세운 것 때문

에, 그러니까 자기가 야구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는 것 때문에 야구를 시

작한 것이었는데 자기 딴에는 엄청 훈련을 쌓고 던진 공이 더 나빠졌다는 생각

에 의기 소침해졌다.

 

 

 

 



1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