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22]

인쇄

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22 ㅣ No.961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투수 코치는 격려를 해 주었지만 공을 던진 그날 철민은 다소 우울했다. 곧 동

생이 서울로 올라 올 것이다. 철민은 생각 없이 지윤이네 아파트로 걸음을 걸었

다. 해는 일찍 져 버리고 하늘은 발갛지 못하고 주홍빛이다. 철민은 지윤의 아파

트 단지 내에 들어 섰다가 아마 지윤이네를 찾아 갔다 돌아 가는 길이었나 보

다, 현주를 만났다. 철민은 현주의 모습이 참으로 반가웠으나 움찔 했다.

"어, 아,안녕."

그래도 철민이 먼저 현주에게 아는 척을 해 주었다.

"철민이구나. 지윤이에게 가는 길이니?"

"응."

"들어 가 봐. 나는 지윤이네 잠시 들렀다가 이제 가는 길이야."

"하,학교 다닐 만 하냐?"

"지금 방학이잖아. 넌 요즘 어때?"

"나는 뭐 잘 살고 있지."

"참 철민아."

현주는 발걸음을 떼다가 안녕,이란 말 대신으로 철민이를 불렀다.

"왜?"

"내가 어렵게 느껴지니?"

"응?"

"나는 잘 못느꼈는데, 지윤이는 네가 날 어렵게 느낀다고 생각하나 봐. 아직 너

에게 조금 어색하긴 해도 친해지면 자연스러워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윤

이 말을 들어 보니까 니가 날 어려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내가 어렵니?"

"그,그건 아닌데..."

"고 이때 니가 나 업어 준 적 있잖아. 그때 너무 고마웠었는데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했지? 너랑 좋은 친구 사이가 되고 싶어. 나는 네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거든. 그러니까 너도 날 어렵게 생각하지 마. 알았지?"

"응."

"나 갈게. 안녕."

"그래. 잘 가라."

""씨, 지윤이 고것이 현주에게 그런 말을 했다 이거지. 좋은 친구라...""

철민은 현주가 어렵게 느껴 진 것이 사실이다. 철민이가 왜 현주를 어렵게 느꼈

는지 그 마음을 현주는 모르는 것 같다. 현주는 철민에게 가까운 친구에게 건네

는 말을 해주고 떠났다. 철민은 그 다정한 말, 좋은 친구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말

이 썩 기분 좋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누구세요?"

"나야. 철민이."

"너, 나 없었으면 어떡하려고 연락도 없이 와?"

지윤은 문을 열어 주면서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너 없으면 집에 가면 되지."

"치, 왜 왔는데?"

"그냥 니 생각 나서 와 봤다."

"흠, 방금 현주 왔다 갔는데..."

"여기 오다가 만났어. 너 내가 현주를 어렵게 생각한다고 말했지?"

"그래, 사실이잖아."

"현주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싫어 하지는 않으니까 되도록이면 그런 말 하

지 마라."

"누가 싫어 한다고 말했니?"

철민이의 표정이 자뭇 심각하자 지윤은 투정하듯 말을 뱉었다.

"야 박지윤."

"왜."

"대학 졸업하고 내가 영 별볼일 없는 놈이 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날 싫어 할

까?"

"갑자기 그런 질문을 왜 하냐?"

"오늘 내가 혹시 별볼일 없는 놈이 되지 않을까, 느끼게 하는 일이 있었거

든."

"사람들 나름이겠지 뭐. 혜지가 지낼 방 치워 놓았거든. 언제 올라 온대?"

"곧 개강 할 테니까 그 안에 오겠지. 걔가 오면 네가 좀 골치 아파 질거다."

"괜찮아."

"좋은 친구 사이가 뭐냐?"

"무슨 질문이야?"

"좋은 친구 사이라는게 의미가 있는거냐."

"무슨 의미? 그냥 말 그대로 좋은 친구 사이란 의미지."

"너랑 나랑도 좋은 친구 사이냐?"

"그럼,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무슨 말이냐?"

"몰라."

지윤은 철민을 쳐다 보며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철민은 엄마와 함께 올라 온 동생을 지윤이네 집에 맡겼다. 철민을 통해 혜지

와 지윤은 아는 사이기는 했으나 서먹했다. 그 서먹함을 철민이가 없애 주어야

했으나 나 몰라라 짐만 옮겨 주고 자신은 제 갈길로 가 버렸다. 철민의 엄마가

서울 온 김에 아들 사는 곳도 보고 간다는 말을 한 것 때문에 도망 치듯 지윤의

집을 나와 버렸다.

철민은 그 사실을 알았을까? 자신의 어머니가 지윤을 보고 느낀 점과 혜지가 지

윤을 보고 느낀 점을...""잘 하면 얘가 내 며느리가 될려나?"" ""언니가 아깝다

진짜. 나중에 나랑 시누이 사이가 되면 내 잘해 줄게.""

 

새학년 개강을 했다. 철민은 아무래도 자기 동생을 맡긴 터라 지윤에게 자주 연

락을 했다. 자주 연락을 취하면 그 만큼 그들은 더 가까워 지고 있는 것 처럼 보

였다. 그러나 철민은 지윤이가 늘 생각은 났지만 여전히 지윤에게 가슴이 떨리지

는 않았다. 그냥 좋은 친구로만 생각을 했다.

 

철민은 아주 야구 초짜였으나 그래도 야구부에 자기 밑으로 후배들이 들어 왔다

는 사실에 자신도 이제 엄연한 야구 부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니가 박찬오냐?"

"그런데요."

"너 공은 빠른데 컨트롤은 엉망이라며?"

철민이는 어렵게 스카웃트 해온 일학년 박찬오라는 야구부원을 불러 놓고 자기

가 선배임을 과시했다. 다른 선배들은 그 모습이 참 웃겼나 보다.

"야, 찬오야. 걔는 신경 쓰지 마라. 이제 야구 시작한지 육개월 된 녀석이다."

"그래, 김철민. 어디 청소년 대표까지 한 찬오한테 선배 행세 하려고... 너 하

고는 차원이 틀려 임마."

"그래도 내가 선밴데요."

"넌 나중에 진짜 투수가 되면 그때나 선배 행세할 생각 해."

찬오라는 신입생은 철민이를 다소 우스운 표정으로 쳐다 보고는 자기를 부르는

다른 선배에게로 갔다.

"나 유지언이다."

"예. 국가 대표 주전 이루수시죠? 잘 부탁합니다."

철민은 아직은,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씁쓸하기는 했지만 후배가 생겼다는 사실

에 기분은 좋았다.

 

철민은 이학년 때 부터는 글러브와 공을 항상 만졌다. 글러브는 투수 코치 윤석

호씨가 직접 철민을 데리고 가 사주었다. 철민은 남들이 하는 것 처럼 글러브에

다 자신의 등 번호를 그려 넣었다.

"내가 어떻하든 널 진짜 투수로 만들어 줄테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아라.

알았냐 김철민."

"네."

철민은 여전히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제 글러브를 끼고 캣치 볼 연습

이란 것도 하게 되었다. 5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철민은 매일 신입생 한 녀석

과 공을 던지고 받았다. 한달이 지나자 하루에 던지고 주고 받는 횟수가 100회

가량으로 늘어 났다.

 

"김철민 이리와서 찬오가 던지는 폼을 유심히 봐 더라."

철민은 투수코치 옆에 속도계를 들고 서서 신입생인 찬오가 던지는 폼을 유심

히 살폈다.

"찬오는 하체가 투구폼을 안정 시켜 주기는 하는데 어깨가 너무 빨리 열린다.

공을 너무 빨리 놔. 던지는 팔이 귀를 지났을 때 공을 놔라. 알았나."

투수 코치가 공을 던지고 난 다음 찬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말들을 철민은

하나 하나 머리에 새겼다. 철민은 찬오가 던질 때마다 속도를 재 주었다. 투구

속도는 꾸준히 140키로 후반을 가리켰다. 어쩌다 150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

다. 철민은 혀를 내 둘렀다. 자신은 한달여 전에 백 삼십 키로 중반의 공을 던

진 적이 있다는 기억을 했다. 야구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단 생각을 했다.

"야, 김철민 이제 니가 한 번 던져 봐. 성수는 이리 와서 속도를 재 봐라."

철민은 다소 당황했다. 캐치볼을 꾸준히 했으나 아직 정식으로 투구 폼을 잡아

가며 던지는 것은 훈련하지 않았다. 방금 빠른 공을 던진 찬오에게 약간 기도 죽

어 있었다.

"제가 던져요?"

"그래. 잘 던질 생각하지 말고, 하체가 얼마나 투구폼을 받쳐 주는가 나중에 투

구폼을 잡아 줄때 어떻게 할 것인가 만 알아 보는 것이니까 부담 갖지 마라."

 

철민은 방금 까지 찬오가 서 있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아까 찬오의 모습을 보

고 코치가 설명해 준 것들을 되 새겼다.

"철민아 던져 봐."

철민은 멋진 폼으로 공을 던졌다. 하체가 단단하게 공을 던지는 상체를 받여 준

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은 조금 높았으나 상당한 소리를 내며 포수 미트에 꽂히

었다.

"어 폼이 자연스럽고 괜찮은데. 머리 좋은 놈이라 그런지 금방 잘 따라 하네."

투수 코치가 선수들과 별반 다름없는 투구 폼으로 무리 없이 공을 던진 철민에

게 칭찬하는 말을 건넸다.

"코치님."

속도를 재던 성수란 학생이 놀라는 표정으로 코치를 불렀다.

"왜?"

"금방 철민이가 던진 공이 153킬로 미터가 나왔는데 믿어 지세요?"

"엉?"

코치가 놀란 표정으로 속도계를 들여다 보았다. 기가 차다는 얼굴 모습이다.

"야,김철민 너 괴물이냐?"

"네?"

"지금 이 정도 속도면 내년 여름 쯤이면... 다시 한 번 던져 봐."

철민은 코치가 시키는데로 다시 공을 던졌다. 아까처럼 던질려고 노력했다. 그

리고 공이 빠르다는 말에 어깨에 힘을 주었다. 공은 원바운드 되어 포수가 겨우

잡을 정도로 엉망으로 들어 갔다.

"야, 김철민. 아까 폼이 아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 갔어."

"이번엔 139키로 미터 나왔습니다."

"그래, 아직 훈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아까처럼 던질 수는 없겠지. 김

철민 처음에 던졌던 것을 상기하며 다시 한번 던져 봐. 어깨에 힘을 빼고."

철민은 다시 던졌다. 하지만 의욕만 앞설 뿐 처음처럼은 되지 않았다. 이번엔

공이 어이 없게도 포수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들어 갔다. 철민이 던진 공

이 포수 뒤에 쳐 놓았던 그물을 세게 때리고 떨어졌다. 철민은 무안했는지 글러

브 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 거렸다.

"그래, 차근 차근 하자. 아직은 캣치볼만 꾸준히 해라."

 

철민은 사월달을 시작하면서 열린 대통령배 야구 대회에 참가를 했다. 물론 선수

출전 명단에 기입도 되지 못한 신세였지만 덕아웃 벤취라도 한 자리 차지했다는

사실에 야구부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철민은 덕아웃에 앉아 찬오가 공 던지는 모

습을 보았다.

"야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 정열을 넣어서 우싸 우싸!"

 



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