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죽는 연습, 사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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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광 [paschal] 쪽지 캡슐

2000-03-07 ㅣ No.530

우리는 매일 7시간 가량의 잠을 잔다. 만약에 낮 동안의 생활이 즐겁다 하여 한 삼일 동안을 매일 잠을 자지 않고 지낸다면 천하장사라도 잠을 안자고는 못 배길 것이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먹으라해도 잠자느니만 못하고 천하 일색 미녀를 데려다 놓아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듯 소중한 잠을 매일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을 무엇일까? 오늘 저녁 자리에 들면서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삼백 예순 닷새 단 잠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물론 낮에 힘껏 일하고 밤에는 편히 쉴게 하시려고 잠을 주셨으니 잠은 은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쉼의 의미 말고 다른 뜻이 없을까.

죽음은 영원한 잠이며 영원한 이별이다. 죽음은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의지에 속한다. 인간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엄청난 사건은 일회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직접 이 일에 개입하셔서 우매한 인간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수없이 죽는 연습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으면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세상일 다 놓아두고 저 세상으로 가 버리는 것이니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연습시키시는 게 아닌가.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죽음조차도 어느 날 우리에게 불시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연습을 시킨 후에 주시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영혼아 하고 부르신다면 모든 세상 것 다 놓아두고 두말없이 네 하고 가야 되는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세속적인 것에 연연해하며 살아왔던가. 편안한 안식의 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어 일어남도 예삿일이 아니다. 기실 매일 매일 단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깨어 일어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기적의 은총인가. 매일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 기적이며 감격의 은총인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감사치 않는 것은 잠이라 하고 영원히 쉬고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그렇다면 잠과 죽음의 차이란 다시 깨어 일어나느냐 아니면 못 일어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하는 차이는 죽음에서 다시 깨어 일어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매일 매일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일,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참으로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새롭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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