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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3. : 하느님이 마련하신 일 : 엉터리 구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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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5-06 ㅣ No.5365

 

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3. : 하느님이 마련하신 일 : 엉터리 구역장


셋째가 태중에서 제법 클 때까지,

우리 반에는 새 반장님이 나서질 않았다.


다만, 같은 층 교우분만이 만날 때마다 걱정을 하셨다.

우리 반에는 모든 여건상 충분히 일한만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서로가 미루는 바람에

내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도록

반모임과 월례회, 반장교육을 다녀야했다.


게다가 구역장님은

“애기 낳고 한 두 달간 휴가를 줄테니, 애기 업고 하자.” 하신다.

‘맙소사, 이젠 어린 애 둘도 모자라,

갓난아이를 업고 반장을 하라네......‘


그런데, 왠 조화인지,

평소 반모임은 안 나오고,

오히려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데모하러 가자고 나타나서는

반모임 하던 우리 모두 데리고 관리실을 갔었던 그 자매님이,

반장일을 수락하였다.


결국 아기를 낳아도 따로 휴가가 필요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얼마간 집안일에 전념했을까?

반장님이 이민을 가셨다.

(아마, 거기서도 좋은 일 하시면서, 잘 살고 계시겠지?)


다음으로 적임자라 여겼던 분이 이어 반장을 하셨다.

‘얼마나 좋아, 보기 좋잖아.’


하지만, 선천적으로 게으름을 즐기는 나를

그냥 두실 하느님이 아니시지......


새 반장님이 갑작스레 수술을 하시게 되었다.

“아이도 너무 어린데, 어쩔 수가 없어서,

수술을 해서 완전하게 회복할 가능성이 반반이래. 어쩌지?”

“큰일이네요. 걱정되시겠어요. 

반장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께요.

수술이 잘 돼서 쾌유되셔야 하는데......“

(으이그, 또야?)

‘근데,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면, 벌주실건가요?’


새로 반장이 되고 보니,

우리 구역은 멤버들의 물갈이가 있었다.

이사로 반장님 두 분이 바뀌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큰일은 구역장님이 그만 두셔야 했다.


경력 쟁쟁한 형님들은,

서로 눈 맞추기를 멈추고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알면서 하겠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

우리 구역에 분열 조짐이 생기며, 이상기류가 흘렀다.


얼떨결에 나이가 가장 어린,

뒷 반 반장님이 구역장에 되고서야,

우리 구역은 그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일을 맡는 건, 아무 것도 모르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자들의 몫이다.

사람의 눈과 하느님의 눈은 그 잣대가 다른가부다)

지도자의 몫이 그 공동체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평화를 찾은 우리 구역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새로 구역장일을 힘겹게 하고 있던 뒷 반 반장님이,

나처럼 늦둥이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웠다.

‘혼자가 아니야.’

근데, 다시 반장님들이 돌아앉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친구처럼 지내는 뒷 반 반장님의 처지가 딱하긴 한데,

그걸 내 몫으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내 몸이 또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 설마 넷째란 말인가?’

그때의 수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꼬박 사나흘을 앓고 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이 주시면 제가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구역장일을 기꺼이 하겠습니다.

것두 아주 열심히 할랍니다’


그날 밤 달게 잔 후,

아기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내가, 구역장을 하겠다고 할 때,

뒷 반 반장님은 무척 고마워했지만,

사실 이일은 내 스스로 맡은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정말 열심히 하였다.

우리 구역 반장님들의 저력은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했고,

어린 구역장이 입을 벌리면,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일(?)만 열심히 하였다.

입과 머리로 하는 기도 외에는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계속했던 취미생활을

조금도 양보 하지 않은 채,

우리 구역에 과제만을

확실하고 완벽하게 제출하는데 열중했다.

물론 구역장이 하는 일이면,

몸과 시간을 아끼지 않은 우리 반장님들의 덕택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우리 반의 반모임이 그랬다.

워낙 반원이 없는데다가,

그나마 이사 가고, 취업하고,

도무지 사람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엉터리 반장이 안스러워,

이사 간 자매님들이 반모임에는 참석해주었다.

결국 나와 팔순 할머니, 그리고 이사 간 두 사람으로

매번 반모임이 이뤄졌다.


그리고 나만 남았다.


구역장이 반장인 반에 모임에

나오는 반원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의 활동에는

가슴속에 충만한 주님이 안 계셨다.

다만, 머리와 손, 발, 그리고 입으로만, 주님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적잖게 상처받은 자매님들이 있었겠구나 생각된다.

어리석은 편견으로만 일을 했으니...


그때 나는 엎드려 기도했어야 했다.


끝내, 그걸 자각하기도 전에

이사선언 2탄이 발효된다.

남편은 청학동으로 이사를 가자면서,

집을 내놓았는데, 곧바로 집이 팔렸다.

이곳에 이사 온 지 만 7년이 되어서의 일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단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뒷 반 반장님 : 송현숙(요셉피나)자매님 : 처음 요셉피나를 보았을 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나는 또 다른 하느님을 만났고, 내가 어려울 때 용기 있는 충고에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나는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중계동 성당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였으며, 자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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