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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4. : 낯가림이 심한 사람 : 또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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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5-09 ㅣ No.5374

 

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4. : 낯가림이 심한 사람 : 또 반장


**단지의 첫인상은

아파트 속에 주택가 같았다.

분홍과 연두.

아파트 복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좀머씨이야기의 삽화 같은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그림 그대로였다.

학교도 한 눈에 보여서,

막내가 학교를 갈 때면,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을 때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7년간 같은 성당을 다니다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구역장을 하다가 왔건만,

나의 전력(?)을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랬다. 

이곳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교적도 내 스스로 옮겼고,

교표도 성물방에서는 팔지도 않는

중계동 성당 교표를 붙여놨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지구(지금은 지역)의 지구장님을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봤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드디어 잡혔구나’

그런데, 이 지구장님이 나를 모르는 거였다.

‘뻘쭘.  내가 정녕 구역장이었단 말인가?’


몇 달이 지나고,

성당을 다녀오다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한 자매님이 내 가방을 보고는,

“혹시 성당 다녀오세요?”

“(깜짝)......녜.”

“이사 오셨나봐요.”

“녜 (이 사람의 정체가 뭘까?)”

“와, 잘됐네요. 저 성당 반장이예요. 몇 호세요.”

“1307호......”

“알았어요.  우리 반모임때 연락 드릴께요. 꼭 나오세요.”

“녜.(와, 여긴 반장 있다. 야호, 열심히 나가야지)”


이사 온 지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반모임에 참석했다.

지구장님까지 있어서,

그전에 알 수 없던 또 다른 반모임의 틀이 느껴졌다.

반원들은 대부분 형님들이었고,

어린 새 식구를 기쁘게 받아주었다.

‘같은 성당 안에서도,

소공동체 사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무엇보다도 반모임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형님들의 무게 있는 대화가 자꾸 많아졌다.

“우리 집이 팔리지가 않아서 걱정이네.”

“날짜가 언제지요?”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지 뭐.”

“그럼 전세라도 놓고 가야하지 않을까요?”

(이건, 또 뭔소리야?)

“반장님, 이사가세요?”

“응. 루시아 몰랐어?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해야 되거든.”


다음 모임부터,

또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그렇게 출석율이 좋았던 형님들이

하나 둘, 사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일이네, 새 반장을 뽑아야하는데...”

“글세, 사람들이 나오질 않으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얘기냐’


새반장을 뽑기로 하고 나서 반모임에 나오는 사람은

지구장님 하고 나하고, 반모임하는 집주인하고 반장님.

끝내 새반장님 없이 이사를 가셔야 했다.


반장님의 공백을 지구장님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리가 있었다.

우리 반 빼고도 구역 내에 두 반에 반장님이 없었고,

그 역할을 도우미가 있다 해도,

지구장님이 도맡아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공포(?)의 제비뽑기는 없었다.

윗 층에서부터 돌아가며 6개월씩 반장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으로 14층 형님이 하셨다.

레지오 단장을 하시고 계셨으므로,

아주 바쁘신 분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13층 내 차례가 되었다.


지구장님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루시아랑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전에 일도 열심히 했다고 하고......

6개월씩 반장이 바뀌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좀처럼 줄지를 않네요.

그래도 힘들겠지? 애도 어리고......”


‘어어, 이건 아닌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뭐라고 말하지?’


“그럴께요.(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근데요,  우리 남편이 야근을 많이 하거든요.

제가 반장을 해보니까, 

반장네 집은 늘 오픈 되어야 하던데,

저희 집에 잠자는 남편이 거의 있어요. 

반모임장소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다음 반모임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형님들까지 모두 나오셨다.

지구장님이 미리 말씀을 하신 다음이어서,

반모임장소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며,

모두 다 등을 두드려 주셨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내가,

그래도 공동체를 이루며,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주님은 또 나를 반장으로 임명하셨다.


그러니까. 

창 4동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두 네 번의 반장 임명장을 받게 되었는데,

나보다 더 많이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시라.(계속)



※ 지구장님 : 김명리(리디아)자매님 : 차가운 분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몸을 던져 일하는 모습에서 참다운 주님의 일꾼을 보았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겉돌던 나를 잡아주시기도 했지요. 지금은 바로 앞집 살이를 하면서도 여유 있는 차 한 잔을 못했네요.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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