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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와 꼴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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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0-08-15 ㅣ No.7201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이기적 유전자와 꼴베 신부
    자기 생명을 내던져 다른 사람의 생명과 교환한다. 인간도 동물처럼 "이기적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마더 테레사. 그녀가 `성자`가 된 것은, 단지 한사람 길에서 쓰러져 있던 한 남자의 죽음을 지나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로부터였다.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여학교 교장의 직위를 버리고 캘커타의 슬럼가로 들어간다. 그녀의 한 일은 단지 한가지, 가난한 사람들을 꼭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창조해 보내주신,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다미엔 신부. 한센씨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있는 모라카이섬에 단신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자긍심과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려고 고군분투했다. 교회, 주택, 병원을 짓고, 묘지를 팠다. 결국, 자신도 한센씨병에 걸려, 모라카이섬에서 죽는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퉁퉁 부은 얼굴, 허물거리는 피부, 붕대로 칭칭 감은 손발로 목수 일에 정성을 쏟았다. 그가 한센씨병에 걸렸을 때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제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형제여라고 부를 수 있게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 꼴베 신부의 경우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20세기가 남긴 인류 최악의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1941년의 일이다. 한 명의 수인이 수용소를 탈출했다. 나치는 본보기로 10명의 수인을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불려나오는 사람은 물조차 주지 않고 굶겨 죽이는 아사(餓死)감방 행이다. 사람들은 아사 감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가를 알기 때문에 공포에 질렸다. 무작위로 처형자가 불려나와졌다. 10명이 다 불려졌을 때, 수인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중에 있는 한 사람 대신으로 나를 넣어줄 것을 희망합니다." 그가 꼴베 신부였다. 나치는 신부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꼴베 신부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신부 대신으로 목숨을 건진 이는 가요비니체코라는 사람이었다. "그때, 신부님과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헤어졌는데, 신부님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요비니체코씨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그는 심한 자책에 빠진다. "그렇게 훌륭한 사제를 죽음으로 몰아낸 것은 나다. 내가 죽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오랜 시간 후에 그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 말없이 미소짓던 신부의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닫고, 긴 세월의 고뇌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는 꼴베 신부의 그 "사랑"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된다. 콜베 신부는 1930년부터 6년간 일본에 와서 선교사로 일했다. 큐슈의 나가사키에는 그가 설립한 수도회가 남아있고, `성 꼴베 기념관`도 있다. `성 꼴베 기념관`의 관장, 오자키(小崎) 신부의 말. "지금까지 나는, 꼴베 신부가 가요비니체코씨를 구하기 위해 대신 죽겠다고 신청한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사실은 아사 감방에 함께 넣어진 9명을 구하기 위해 신청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사 감방에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속옷을 입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먹을 것은 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몇 날 지나지 않아 확실히 죽는다. 살아날 희망은 조금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여기서는 완전히 짓밟혀버렸다. 그들에게 삶의 의미 같은 것이 있을까? 그 가운데 꼴베 신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망가진 마음을 받쳐주며,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종을 지켰다. "신부는, 시체를 치우러 오는 병사를 상냥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오자키 신부) 9명이 다 죽어 나가고 신부가 최후의 한사람이 되었다. 놀랍게도 17일간 살아남았다! 보통, 인간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17일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부는 고질적인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감방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는 나치의 간수로부터 몽둥이로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나치는 신부에게 독주사(훼콜산)를 놓아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최후의 한사람이 되어서도 신부는 고결함을 유지했다. 존엄을 잃어버려야할 상대가 자애로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나치는 결국 꼴베 신부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승리의 소식은 살아남은 수인들에게 전해졌다. "아우슈비츠에 희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꼴베 신부의, 사랑의 죽음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살자, 끝까지 살아남자. 생명은 소중하다.` 고 하는 힘이 용솟음쳐 올랐다. 그 마음의 변화를 나는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아담이라는 사람의 증언이다. 꼴베 신부는 지금 카톨릭교회로부터 복자(福者)로 추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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