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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계의 큰 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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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0-12-26 ㅣ No.7822

 

한국문학계의 큰 별이 지다...


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어 오랜만의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만들어준 24일. 한국문학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밤11시 7분. 강남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입원중이던 미당
 (未堂) 서정주 시인이 85해 부여잡았던 생의 끈을 놓은 것
 입니다. 그의 병실을 지키는 지인들에게 "괜찮다. 괜찮다"
 천상병 시인의 시구절 같은 말로 화답한 후,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평생 詩를 사랑하고 詩와 함께한 인생이었기에,
詩처럼 아름다운 날 떠날 수 있었는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복받은 인생이었습니다.
 
☞ 중앙일보 [분수대-미당의 삶]
    경향신문 [머무름 거부한 ’시의 政府’ ]
    동아일보 [미당선생님 영전에 부쳐 - 환한 웃음 아련한데...]


한국詩史의 거목으로 그가 이룬 시적 업적은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고, 문학을 꿈꾸는 많은 후학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땅의 지식인들에게 멍애처럼 묻어갔던 ’친일시인’의 낙인이 그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일제말기의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는가 하면 자유당 정권 때 이승만 전기 집필, 80년대 신군부 때는 전권 고무찬양에 동참하는 등, 문학계 거성으로서 진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은 것입니다. 큰 인물이었기에 그 비판은 더욱 거셌고, 그의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비판은 더욱 날카로왔습니다.
 ☞ 인터넷 오마이뉴스 [서정주씨 타계와 반민족행위]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사람들 조차도 그의 시에 대해서는 존경을 감추지 않습니다. 고은 시인의 말마따나 ’시의 정부(政府)’라 할만큼 미당의 시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극점에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뉴스메이커 [서정주 제자가 전하는 미당 인물이야기]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수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질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제, 이승에서의 영광도 접고, 그 만큼의 업보도 내려놓고, 훨훨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시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우리말,우리시를 보듬고 다듬는 것으로 고귀한 시성에 화답하는 것이 남겨진 우리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 유니텔 시의나라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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