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사순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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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광 [paschal] 쪽지 캡슐

2000-03-06 ㅣ No.521

그리스도교의 초기 2세기 동안에는 사도 바울로의 정신이 엄격히 준수되어 주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축일이 일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축일들이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결같이 예수가 영광스럽게 되심을 경축한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오늘날 결코 적지않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끝나는 그리스도교는 자기 본질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입니다. 그것은 이교도입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사순 시기는 '속죄'의 시기를 뜻했고, 참회는 절대적으로 '육체적 희생'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단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절약하는 것이었고, 금육은 생선보다 고기가 더 먹고 싶어도 생선을 먹는 것이었으며, 12세 이상의 신자들은 고행을 위한 거친 모직 셔츠를 입어야 했고, 신자들은 슬픈 표정을 지어야 했으며, 음악과 건전한 즐거움도 즐길 수 없이 억지로라도 엄숙한 태도를 지녀야 했었습니다.

결국 수단이 목적이 된 셈입니다. 활이 너무 굽어지면 결국 부러지고 마는 법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순절이 이렇게 거의 이교도적인 것으로 변질된 사실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사순절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하는 주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성서 및 교부신학의 연구에 힘입어 사순시기의 전례가 새롭게 조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회의 성서적 개념이 무엇보다도 '회개'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단위로 사순절을 진정으로 준비하려면 우리 존재의 깊은 '회개'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과거의 사순절을 특징짓던 참회의 고풍스런 관습보다는 훨씬 진지하며, 훨씬 심오하며, 훨씬 탁월한 것이 회개입니다.

빠스카를 준비하는 시기는 사랑 자체이신 분에 대한 '피나는' 회개의 '기쁜'기념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 존재의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궁극적 운명을 포함하기 때문에 피안의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책임입니다. 그것은 사랑 자체이신 분을 향하여 나아가며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므로 '기쁜'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단 위에 '자기 아들'이 아니라 훨씬 더 심오하고 고통스러운 자기 '자유'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므로 '피나는' 선택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훌륭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의 자유를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인간을 부르시며 약속하시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으시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내맡기느냐, 아니면 자신을 선택하느냐 하는 자유를 가지고 하느님과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다운 수난은 게쎄마니에서 그분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기 뜻을 포기할 때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라고 절규함으로써 '자기의' 길을 스스로 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광스러운 거부' 대신에 '피나는 응답'을 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보다도 자기 아버지를 택함으로써 회개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과감히 자기를 비우는 것이고, 진실로 우리의 사순절이며 기쁨 가득한 빠스카 축제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이런 선택은 자유의 위대함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그분이 자기 뜻을 최초로 포기하시지 않았다라면, 그분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택하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내적이고 신비로운 힘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생명의 원천에로 쉽게 이끌리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뜻을 자유로이 수락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참되고 결정적인 모든 회개는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시며 자유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회개해야 하고, 자신의 수락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고, 이기심의 싹들이 자비심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도록 잘라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사순절의 본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빠스카, 기쁨의 축일에 대비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용기를 가지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결정적 수락에 자발적으로 근본적 충실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사순절이 활기찬 도약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순절이란 하느님께 온 힘을 다하여 단순하고 평온하게 자신을 거듭 포기하는 것이 되고, 하느님이 빛과 참다운 자유의 활력을 매순간, 특히 어두움과 불확실과 의혹의 순간에 우리에게 불어 넣어주신다는 뜨거운 확신을 거듭 표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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