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잃어버린 40년의 세월(퍼온글)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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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희 [moonhee56] 쪽지 캡슐

2003-02-24 ㅣ No.3405

잃어버린 40년의 세월 (1편)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 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 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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