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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범 [ddong] 쪽지 캡슐

2001-03-20 ㅣ No.4448

 

 

 

그가 내게 있을 때

 

긴 머리 손가락으로 빗겨 주면서 좋아했습니다

무릎에 앉혀놓고 하늘 보여 준다며 좋아했습니다

가슴에 기대게 하고 심장소리 선물한다며 좋아했습니다

왜소한 가슴에 손 넣게 하고 따뜻하게 데워준다며 좋아했습니다

 

그가 내게 있을 때 그랬습니다

결코 작은 나이 아닌데 어린아이 마냥 좋아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내 앞에서 그가 그랬습니다

너무 초라해 줄 것 없는 내게 그는 그렇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살포시 웃는 얼굴로 다가서는 모습이 그에겐 가장 큰 기쁨이라고

빈 손으로 있어도 빈 가슴으로 있어도

그 때문에 줄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 그랬습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사랑을 하면 어린아이 같아진다고

그 모습 싫으면

사랑 안하고 어른 될까 하고 그가 그랬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어린 아이 키우는 재미로 사랑할 거라고

그렇게 웃어넘겼습니다

 

어느 날

그가 그랬습니다

담배를 피워 물며 그랬습니다

어린아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그땐 그 말이 무슨 의민지 몰랐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가 어른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 그런 말했었나 봅니다

그가 담배를 꺼낼 때 이미 어른이 되어있었나 봅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그가 그랬습니다

내 슬픈 눈을 외면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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