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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주님 은총이 필요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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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육 [jangjy] 쪽지 캡슐

2010-07-27 ㅣ No.7185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과
    우리라고 표현되는 나와의 긴밀한 대화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설정되지 않으면 기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대화라고도 합니다.
    대화의 소중함은 서로의 말을 듣는 것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말을 듣고, 자녀가 아버지의 말을 듣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께 부탁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청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듣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우리는 대화가 아니라 자주 독백을 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청원들을 일방적으로 열거만 합니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금방 자리를 떠나갑니다.
    주님께 청원한 내용이 받아들여졌는지를 기다리며 듣는 침묵의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행동은 두 가지에서 연유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정말 강한 것이든가,
    아니면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머릿속 관념으로만 경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면, 기도의 때와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장소도, 어떤 시간도 모두 주님께 봉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로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않으면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자신과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 친구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
    그들이 바로 용서하고 대화해야 할 대상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용서 못하고
    분노의 마음으로 대하고 있으면 이것이 내 인생을 힘겹게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기도는 용서로 만들어가는 삶의 변화입니다. 

    자신 안에 용서의 마음이 흐르지 않는다면 기쁨과 희망이 없습니다.
    용서의 마음은 강물처럼 흘러 씻겨야 합니다.
    흐르는 강은 외적으로만 보이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자신의 수많은 상처와 추억을 간직하고 흐르는 침묵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외적으로 보이는 어떤 것을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그 내면의 언어를 가르쳐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루카 11,1).

    기도하는 방법을 주님께 청하는 이유는 기도가 주님의 은총이라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고 주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이고,
    굳게 믿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기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준비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삶에 끌려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9-10).

    청하는 것은 현재이지만, 주님의 은총을 받는 것은 미래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찾는다는 의미는 이미 주님께 받은 은총을 깨달을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주님께 받은 많은 은총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두드려야 할 문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문은 두드려야만 열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주시지 않고,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시지 않습니다.(루카 11,11).

    창세기 3장에서처럼, 뱀이 영원한 생명을 단절시킨 주님의 적을 상징한다면,
    물고기는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전갈이 독을 품은 생명을 상징한다면, 달걀은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상징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힘은
    기도 속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려고 애쓸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홍승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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