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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성인에 대하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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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6-05-17 ㅣ No.6663


베네딕도 성인에 대하여



15세의 젊은 베네딕도는 보모와 함께 그 학업을 끝내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의 학업의 중점을 이루는 과제는 수사학(웅변술)이었다.

웅변가로 성공하는 사람은 논쟁을 잘해 나가거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의 리듬과

유창한 말의 기교로 남을 확신 시키는 사람이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힘이 그가 받는 교육의 목적이었다.

그러한 철학은 또한 학생들의 삶 안에서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쥐고 있었다-교육, 부, 젊음- 그리고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진리가 아니라 쾌락을 쫒는데 쓰고 있었다.

베네딕도는 이러한 가치들이 자기 동료들의 삶과 윤리 안에서 판치고 있는 것을 몸서리치며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영혼을 생각하며 로마에서 달아나 유산을 포기하고 보모와 함께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거기서 하느님께서는 그를 더욱 깊은 고독으로 조용한 삶 그 이상으로 부르셨고 그는 수비아꼬의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는 은수자로써 다른 은수자, 로마누스의 지도를 받으며 살았다.

몇 년 간의 기도를 한 후에 근처에 있는 수도승들은 그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그에게 자신들을 이끌어 주기를 간청하게 되었다.

베네딕도는 그들에게는 자신이 너무 엄격하리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계속 그분을 청하였고…… 마침내는 그 엄격함을 못견디고 그를 독살하려 하게 되었다.

그의 경고가 진실이 된 것이다.

그래서 베네딕도는 다시 혼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다음 번의 추종자들은 좀더 진실되었고 그는 수도승들이 12명씩 한 공동체로 따로 살 수 잇는 수도원을 수비아꼬에 세우게 되었다.

이 수도원들이 바로 교회 수도전통의 뿌리가 되는 수도원의 기초를 세운 몬테카시노에 있었다.

이제 그는 이 작은 별개의 독립된 공동체를 세우는 대신에 제자들을 전체 한 수도원에 모아 들였다.

그의 여자 형제인 스콜라스티카 성녀도 수도생활을 하기위해 그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한 수도적 전통이 거의 1500년의 흐른 뒤에 그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그는 혁신가였다.

누구도 그와 같은 공동체를 세운 적이 없었고 하나의 규칙으로 그들을 지도한 적이 없었다.

이미 우리에게 역사의 일부인 것이지만 그것은 미래를 향한 대단히 위험한 도약이었다.

베네딕도는 거룩함과 더불어 이러한 도약을 할 능력을 지닌 분이셨다.

수도생활에 대한 그의 신념과 지도는 지금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로 알려져 있는 책에 모아졌다.

그리고 그 규칙서는 15세기가 지난 아직도 수도생활을 방향지우고 있다.

이 작지만 힘있는 규칙서에서 베네딕도는 복음서를 전하는데 말의 힘과 웅변적인 리듬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은 배운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학자들은 그의 규칙서가 그 시대의 수사학적 법칙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그것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그것이 단지 망치와 같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망치는 집을 짓는데 사용되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내리쳐야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수사학은 악덕을 부추기는데 사용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을 전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을텐데… 베네딕도는 수사학이 사람들을 타락시키는데 이용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멀리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개혁시켰다.

베네딕도는 그것이 사람들을 도랑으로 빠지게 한다고 해서 하느님께 이르는 소리의 힘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느님과 천사들의 눈 앞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자, 일어나 마음과 목소리를 합하여 하느님을 노래하자".

식사때 마다 혹은 손님을 받아들일 때, 혹은 수련하는 이들을 교육시킬 때 항상 누군가 큰 소리로 읽혀지는 규칙서가 있었다.

한번 듣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이 규칙서가 자주 공동체에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 베네딕도는 말의 힘의 가장 강력하고 진실한 원천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있었다.

"성서의 어느 구절 어느 장이 이 지나가는 삶을 가르치는 완전한 규칙이 아닌가?"

그는 하느님의 말씀의 힘을 체험했었고 성서에 표현된데로 "

10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 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 오지는 않는다." (이사야 55:10-11)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이 바치셨던 유대 전례에서 유래한 노래와 시인 시편을 선택했다.

낮 동안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예수님의 목소리에 우리 목소리를 합하는 것은 베네딕도가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할 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우선될 수 없었다.

"즉시 성무일도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모든 일은 중단된다".

베네딕도는 예수님처럼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4:4)는 것을 믿었다.

성무일도라 불리는 이 기도는 그 날의 특정한 시간에 성무일도서를 가지고 노래하게 된다.

수도승이 그것을 성당에서 바칠 수 없다면 즉시 일하던 어떤 곳에서건 농장에서든, 마구간에서건 무릎을 끓고 하느님의 일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하느님이 어디나 계시다는 것을 의심없이 믿는다 특별히 성무일도를 바칠때는 더욱 그렇다"

교회는 아직도 베네딕도의 이 생각을 믿고 이 성무일도를 교회의 기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단지 말을 읊조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베네딕도는 제자들이 거룩한 독서를 하도록 가르쳤다.

-우리가 기도하는 바로 그 성서를 공부하는 것,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서 수도승들은 성서를 외우고, 연구하고 관상했다.

수도승들이 자유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시편을 기도하는데 쓰여져야 한다.

"성서의 가르침은 책에서 가 아니라 기억에서 나와 이야기되는 것이다.

베네딕도의 "착한 일의 도구들"의 목록에 거룩한 책을 읽기를 즐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거룩한 독서는 지적인 일이 아니라 사랑의 탐구였다.

정신의 훈련뿐 아니라 그것은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와 마음을 조화시키는" 관상의 실행이었다.

"하느님의 각각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으로 깊이 스며들어 기도가 다시 기억에서 뿐 아니라 그 깊은 존재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말로써가 아니라 깨끗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물고자 할 때 한 영혼의 마음은 깨끗해졌다.

letio, 먼저 독서는 독서자가 성서를 읽다가 영감을 받고 멈추어지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자연스운 경향은 그 구절을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곤 한다.

우리 삶에서 이 구절의 말씀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다음으로 계속해 간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독서라 할 수 없다.

다음 단계는 그 구절을 외우고,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읽어서 반복하지 않고 기억을 통해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듯이 들릴 때까지, 하느님의 말씀의 힘이 전부 차지할 때까지.

그 구절이 모든 뜻을 잃고 오직 그 말씀의 힘만이 남아있을 때 독서자는 침묵에 잠겨 생각하지 않고 마음 안에서 그 뜻에 대해 성령의 영감이 활동하시도록 한다.

결국 그는 관상에 잠기게 된다.

베네딕도의 생애의 이야기 중 하나에서 가난한 이가 수도원을 찾아와 약간의 기름을 구걸하게 되었다.

베네딕도는 기름을 그에게 주라고 명령하지만 재정 담당자는 기름이 아주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를 거절했다.

재정 담당자(당가라 칭함)가 그걸 애긍으로 주고나면 수도원에는 기름이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불신에 화가 난 베네딕도는 무릎을 끓고 기도했다. 그가 기도하자 기름병에서 보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도승들이 놀라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 기름은 병을 가득채우고도 넘쳐흘러 마침내 뚜껑을 열어 버리고 바닥에 흘러 넘쳤다.

베네딕도의 기도에서 우리의 마음은 생각과 지적인 노력으로 차 있지 않은 빈 그릇과 같다.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우리를 채워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뿐이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은 하느님의 넘치는 선을 우리 마음에 가득차게 하는 것이다.

먼저는 영감으로써, 다음은 관상적 사랑으로 넘치는 마음으로써… 베네딕도는 547년 하느님 앞에 서서 기도하던 중 임종하였다.


http://cafe.daum.net/osbfriends 베네딕도의 벗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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