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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교우님들에게,5월달 생활말씀.포콜라레 에서 [퍼옮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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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순 [appol] 쪽지 캡슐

2006-05-07 ㅣ No.6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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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사도행전 10,  34 - 35)

 

하느님의 마음은 한없이 넓습니다. 그분께는 민족과 나라간의 분열, 언어와 인종간의 분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같은 존엄성을 지닌 그분의 자녀로 여기십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보편적이고 열려있는 하느님의 이런 사고방식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 하나의 민족이며 선택된 백성임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민족 사람들과 참된 형제애의 관계를 맺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카이사리아에서 이민족(異民族) 백인대장의 집에 들어갔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라움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과 이민족 사이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어느 누구도 이방인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오 5,  45). 하느님께서는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가 이민족 사람들과 거리를 두도록 하는 선입견을 극복하면서 백인대장 앞에서 확언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신다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분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마음의 둑을 부수고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들, 세대들, 백인과 흑인, 문화와 민족간의 분열에 얽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감을 두는지 모릅니다. 이로부터 불확실함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너그럽지 못한 불용(不容)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 같은 종교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사이에, 같은 도시의 주민들 사이에, 정당들 사이에, 스포츠 그룹들 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장벽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과 싸늘하게 잠재해 있는 원한, 소리 없이 스며든 악한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어떻게 보편적인 형제애를 마음에 품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들인 우리는 우리가 다가가는 모든 사람을 형제와 자매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형제 자매라면 우리는 멈추지 말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로 시작해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봉사하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줄 아는 사랑입니다. 대화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어려운 상황에 하나가 될 줄 알며, 그의 짐과 걱정을 짊어질 줄 아는 사랑입니다.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이해받았고 받아들여졌다고 느껴서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풍요로움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이르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성경과 인간의 양심에 적혀있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황금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생생하고 능동적인 관계를 이루게 해 줍니다.

이 사랑은 마음을 움직여 가진 것을 함께 나누게 해 주며, 다른 사람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사랑하게 해 주고, 전쟁과 테러리즘, 투쟁과 굶주림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새로운 구조를 건설하도록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포콜라레운동 로마 공동체의 첫 동료 중의 한 명이었던 피오레는 마야족의 후손이고 11형제 중 장녀이며 가톨릭 신자 원주민인 과테말라의 젊은 처녀 모이라와 함께 그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으며, 이 사실은 메스티소(혼혈인종)와 무엇보다 백인들과 비교해 심한 열등감을 갖게 했습니다.

모이라는 ‘누군가를 더 선호하지 않고' 모든 장벽을 무너지게 하며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피오레와의 만남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무나 기쁘게 환영해 주었던 피오레를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저를 향한 피오레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었어요. 원주민 문화와 제가 받은 가정교육은 옆에 있는 사람이 멀어질 정도로 마음이 닫혀있고 딱딱한 태도를 취하게 했어요. 피오레는 제게 스승이었고 인도자였으며 본보기였어요. 제가 자신 밖으로 나와 신뢰심을 갖고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도록 도와주었어요. 그는 제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도록 권했으며 문화와 방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용기를 주었어요. 마침내 저는 비서학 학위를 받았어요.

그러나 피오레는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제가 지닌 존엄성을 깨닫도록 해 주었어요. 마야족 원주민으로서 제 마음 속에 얼룩처럼 새겨진 열등감을 극복하도록 해 주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희 민족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꿈꾸었지만, 피오레로 인해 저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곧 ‘새로운 백성'이 태어나게 하려면 제가 먼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사랑하면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과 함께 모이라처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저의 ‘네'를 드리며 제 백성에게 이 정신을 가져가기 위한 문을 열 수 있었고 제 가족 안에서 이미 그 꿈이 실현되었음을 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거예요."(아다 웅가로, 「드문 꽃」 마틸데 코키아로 지음, 2003년 로마, 151-153면).■

끼아라 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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