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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에 대한 미국 오푸스 데이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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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6-05-14 ㅣ No.6655


 

다빈치 코드에 대한 미국 오푸스 데이의 입장


소설 다빈치 코드와 가톨릭 교회 그리고 오푸스 데이


최근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신학에 관한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는 독자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분들에게 다 빈치 코드는 어디까지나 픽션의 산물이며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 믿을 만한 정보의 원천은 아니다라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성서의 기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의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대되었습니다.
이들 주제들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것들로서 우리는 관심 있는 독자들이 이를 통해서 도서관의 논픽션 목록에서 접할 수 있는 풍부한 학술적 자료들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비평적 판단을 행하는 독자분들이라면 소설 다빈치 코드에 쓰여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관한 주장들은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내용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례로, 이 책에서는 서기 4세기 경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여러 정략적인 이유로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교리를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입증하는 바에 따르면 신약성서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저술들 속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이 명백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밖에 신뢰가 떨어지는 주장들의 예들은 크라이시스 매거진 또는 카톨릭 앤서즈의 질의응답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들을 끝까지 파헤쳐보기를 원하는 독자분들에게 우리는 에이미 웰본의 책 "소설 다빈치 코드의 허구" 또는 칼 올슨과 산드라 미젤 공저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속임수"라는 책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는 또한 오푸스 데이에 대해서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묘사되어 있는 내용들은 전체적인 인상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도 부정확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소설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통해서 오푸스 데이에 대한 견해를 형성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오푸스 데이에 대해서 풍기는 여러 가지 그릇된 인상들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 내용들을 계속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오푸스 데이와 수도사들



다빈치 코드 전반에 걸쳐서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수도사들(아니 그보다는 희화화된 수도사들)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가톨릭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수도자들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로 오푸스 데이 내에서 그러한 수도자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푸스 데이는 수도회가 아니라 평신도들과 교구사제들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오푸스 데이의 접근 방식은 수도자로서 삶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처럼 속세를 떠나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푸스 데이는 그보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푸스 데이에서 소수에 해당되는 "numerary" 회원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푸스 데이 활동을 조직화하는데 전적으로 투신하고자 독신성소를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원을 하고 수도복을 입으며 짚으로 된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와 육체적인 고행을 하면서 지내거나 하지 않으며 또는 다 빈치 코드에서 묘사되고 있는 수도자처럼 생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수도자의 삶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과는 달리 이들 numerary 회원들은 세속에서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빈치 코드에서 묘사되고 있는 오푸스 데이의 성격은 실제와는 정반대입니다. 수도 공동체들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성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명을 받아들인 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오푸스 데이는 세속 한 가운데서 자신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소명을 지닌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2. 오푸스 데이와 범죄 관련성



다빈치 코드에서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살인하고 거짓말하며, 사람들을 독살시키려 하는 등 그밖에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으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과 교회 또는 오푸스 데이를 위해서 정당화되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짓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3, 29, 58-9쪽 등).



오푸스 데이는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조직으로서 살인이나 거짓, 도둑질 및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행위 등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명백히 단죄하고 있는 가톨릭 신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비록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의 활동을 합치시키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서 오푸스 데이의 영성 교육과 상담을 통해서 회원들이 보다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오푸스 데이 회원들도 때때로 잘못을 범하지만 이는 오푸스 데이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오푸스 데이가 증진시키고자 하는 가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는 각종 범죄 행위들을 오푸스 데이의 탓으로 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푸스 데이가 지상적 재화와 권력을 얻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거짓된 묘사를 일삼고 있습니다.




3. 오푸스 데이와 육체적 고행



다빈치 코드는 오푸스 데이 회원들이 피를 흘릴 정도의 처참한 고행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12, 14, 29, 31, 73, 89, 127-28, 276-79, 293). 그런데 실제로 역사를 통해 보면 일부 가톨릭의 성인들이 그러한 고행을 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에게 고행(금욕)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는 자발적인 희생이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영적인 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희생은 또한 죄로 기우는 성향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여줌으로써 개인적으로도 영적인 선익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에게 어느 특정한 날에 단식을 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다른 방식의 금욕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금욕이 결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누구도 금욕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절제와 영적인 투쟁이 없이는 어떠한 거룩함도 없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15항).



금욕의 측면에서 오푸스 데이는 신앙과 일상적인 삶을 일치시킨다는 정신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어떤 비상한 금욕을 실천하기보다는 작은 희생을 바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비록 피곤할 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기쁨을 마다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매진하거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주는 것과 같은 작은 희생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몇몇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으로 해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앙 안에서 언제나 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던 금욕의 한 형태인 말총으로 된 옷을 입고 고행하는 행위를 제한적으로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육체적인 건강을 합당하게 보살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고행을 행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이러한 고행이 어느 식으로든 자신의 건강을 헤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러한 말총을 입고 고행하는 행위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그처럼 학대하는 것은 그저 불가능할 따름입니다.



4. 오푸스 데이가 어떤 또 하나의 종파를 구성한다는 주장에 대해



소설 다빈치 코드의 여러 대목에서 오푸스 데이는 "분파" 또는 "종파"라는 식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인 즉 오푸스 데이는 가톨릭 교회에 온전히 소속되어 있는 조직이며 가톨릭 신앙과 다른 교의 또는 관행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오푸스 데이에 대해서 "분파"라느니 "종파"라는니 하는 식의 경멸적인 수식어를 붙일 만한 근거를 제공하는 정의 또는 신학(그것이 학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나 할 것 없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푸스 데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과 일상 생활의 활동을 일치시키도록 도와주는 가톨릭 내의 조직입니다.
가톨릭 성직 자치단체(가톨릭 교회의 조직체 가운데 하나)로서 오푸스 데이는 신자들에게 보충적으로 영성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가톨릭의 지역 교구의 활동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는 1928년 스페인에서 가톨릭 사제인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에 의해서 설립되었으며 지역 주교님들의 지원과 함께 성장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정식인가를 받았으며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푸스 데이의 회원수는 평신도 8만 3천 여명(미국에만 3천 여명)과 사제 2천 여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전 세계에 걸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60여 개 국 이상의 나라들에서 오푸스 데이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과 활동들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는 또한 오푸스 데이가 "세뇌", "강요", 그리고 "공격적인 회원모집" 등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식의 고식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그러한 수식에 더욱 적합한 그룹들에 대해서 적용되어야 할 오명을 오푸스 데이에 퍼부어서 명예에 먹칠을 하고자 부당하게 애쓰는 것입니다.



오푸스 데이는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 내에서 특별한 봉사직을 수행함으로써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삶은 외적인 압력을 받아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결정을 통해서 자유로이 봉헌될 수 있습니다. 사실 강압적인 방법은 그릇된 것이고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푸스 데이는 언제나 회원들과 장차 회원이 될 사람들 그리고 관련된 모든 이들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의 한 표시로서 오푸스 데이는 회원 가입에 관한 결정이 전적으로 자유이며 충분히 숙지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되도록 보장하는 특별한 보장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 어느 누구도 우선 6년 이상에 걸쳐 주어지는 오푸스 데이의 회원으로서의 지위에 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을 마치지 않고서는 오푸스 데이의 종신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18세 이전에는 준회원이 될 수 없으며 23세 이전에는 정회원이 될 수도 없습니다.



5. 오푸스 데이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



다빈치 코드는 오푸스 데이의 미국 본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렉싱턴 애비뉴 쪽으로 나 있는 정문을 통해서 출입한다. 여성들은 측면 거리로 나 있는 출입문들을 통해서 출입한다"(28쪽). 이는 잘못된 내용입니다.
오푸스 데이 미국 본부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자신들이 방문하는 부서와 가까운 출입문을 사용해서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한 쪽은 여성 독신회원들을 위한 주거공간이고 다른 한 쪽은 남성 독신회원들을 위한 주거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간의 구분은 성차별적인 것이 아니며,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렉싱턴 애비뉴를 면하고 있는 쪽은 남성 회원들의 공간이 아닌 여성회원들의 공간입니다.
(참고: 그리고 이 책에서는 종종 이 건물을 오푸스 데이의 "세계본부"라는 부정확한 명칭으로 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빈치 코드는 또한 여성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대가도 없이 남성 회원 주거용 부속 홀을 청소하는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남성 회원들보다 열등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41, 415-16쪽).


그런데 이러한 주장도 사실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내의 통상적인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오푸스 데이는 여성과 남성의 존엄성과 가치는 동등하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온갖 직종의 여성들이 오푸스 데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지위에 속한 여성들도 있고, 오늘날 사회가 그 가치를 폄하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전념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정직하게 행하는 일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가치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푸스 데이의 numerary 여성회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원해서 오푸스 데이 센터의 시설을 관리하는-그것이 여성회원들 센터나 남성회원들 센터를 불문하고-직책을 맡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들은 각종 문화활동과 영성교육이 이루어지는 센터들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들 여성회원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 되며 실내 인테리어, 주방담당 그밖에 고도로 숙련된 일들을 담당하는 것에 대해서 합당한 급료를 지급 받습니다.



오푸스 데이 센터에서 행해지는 피정이나 영성훈련 과정에 참가하는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여성회원들의 이러한 전문적인 직업 활동에 대해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오푸스 데이 내에서 여성 회원들이 맡고 있는 일은 지위나 가치 면에서 열등한 것이라는 투의 암시를 하는 것은 이들 여성회원들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행위입니다.




6. 오푸스 데이와 바틴칸 은행과의 관련성 문제



다빈치 코드는 오푸스 데이가 바티칸 은행의 "재정적 위기를 구해 낸" 공로로 성직 자치단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0-41, 415-416쪽).
그런데 오푸스 데이나 혹은 그 구성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바티칸 은행이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 적이 없습니다.



가톨릭 관계 당국에서 1982년에 오푸스 데이를 성직 자치단으로 인준한 것은 교회법상 하자가 없는 이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오푸스 데이의 사도직과 조직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직 자치단이라는 지위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가톨릭 교회가 특별한 사목적 활동을 수행하도록 임명한 여러 개의 교회법적인 조직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은연중에 이 책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성직 자치단이라는 지위는 교황의 특별한 호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푸스 데이 회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교구의 주교들의 권위 아래 놓여있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7. 오푸스 데이의 창설자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시성 문제에 대해서



다빈치 코드는 가톨릭 교회가 오푸스 데이의 창설자를 "빨리"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관련 교회법의 규정을 개정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40-41쪽).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에 대한 시성은 성인의 사후 27년만에(이 책에서 말하듯 20년만이 아닙니다) 이루어졌습니다.



호세 마리아 성인이 1983년 시성에 관한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취지의 관련 교회법 개정이 이루어진 후에 최초로 성인이 된 분들 가운데 한 분이며 따라서 관련 교회법 개정 전보다 더 빨리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마더 데레사는 사후 6년만에 복녀(Beata)가 되었으며(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경우에는 사후 17년 만에 복자품에 오르게 됨) 호세 마리아 성인보다 더 빨리 성인품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983년 이전의 시성 절차 하에서도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경우는 호세 마리아 성인과 거의 같은 기간인 27년만에 성인품에 올랐던 사례도 있습니다.



ⓒ 2006, 오프스 데이 인터넷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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