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골로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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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영 [oteresa] 쪽지 캡슐

1999-12-25 ㅣ No.718

(나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골로 3,13)

 

"너는 왜 남들처럼 못하니", "부모님은 우리에게 뭘 해 주셨어요", "오빠(언니)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조그만 게 뭘 안다고 참견이야"…. 아무 생각도 없이 나오는 한마디의 말이 서로의 마음에 부담과 상처를 줍니다. 냉냉해진 서로를 보며,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표현이나 용서가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기십니다. ’내가 먼저’하는 능동적인 사랑법으로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먼저’ 감싸안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복 음 (루가 2,22-40)

그리고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 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 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 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 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제 1 독서 (집회 3,3-7. 14-17ㄱ)

아비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죄를 벗는 것이며 어미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아비를 공경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구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어 주시리라. 아비를 공경하는 사람은 오래 살 것이며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어미를 평안케 한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비를 공경하며) 하인이 주인을 섬기듯이 자기 어버이를 섬길 것이다. 아비를 잘 섬긴 공은 잊혀지지 않으리니 네 죄는 용서받고 새 삶을 이룰 것이다. 네가 역경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의 효도를 기억하시겠고 네 죄는 얼음이 햇볕에 녹듯이 스러질 것이다. 자기 아비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어미를 노엽게 하는 것은 주님의 저주를 부르는 것이다.

 

 

제 2 독서 (골로 3,12-21)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 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내된 사람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본분입니다. 남편된 사람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모질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된 사람들은 무슨 일에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어버이들은 자녀들을 못살게 굴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꺽어서는 안됩니다.

 

 

 

                                                                     길라잡이

 

성가정 따라하기  

오늘 성가정 축일은 성탄 축일의 연장선상에서 마리아와 요셉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며, 인류가 존립하기에 필요한 사랑, 형제애, 출산을 가능케 하는 상호협력, 교육, 희생 등 모든 가치의 종합으로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늘의 전례는 나자렛 성가정을 모델로 하여 우리들의 가정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줍니다. 나자렛 가정은 우리 각자가, 아버지들은 요셉의 모습 안에서, 어머니들은 마리아의 모습 안에서, 자녀들은 예수의 모습 안에서 자신들을 재발견할 수 있을 때 우리 인간 생활의 참 목적과 삶의 자세를 원천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인 가운데 하나인 집회서의 저자는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기 위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은 숭고한 인간성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의 종교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죄를 벗는 길이며 자기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시는 보증이 됩니다. 그 이유는 가정이야말로 주님께서 원하신 제도이며, 그분의 사랑의 계획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남편과 아내의 의무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그러한 의무를 모든 믿는 이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현해야 하는 사랑의 기본적인 의무와 결부시켜 이야기합니다. 따뜻한 동정심, 친절한 마음, 겸손과 온유와 인내, 상호 용서, 사랑의 실천, 그리스도의 평화, 감사하는 마음, 하느님을 찬양함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드러나는 가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 생활을 거쳐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봉헌으로 이해되는 예수를 성전에 바치는 행위입니다. 루가가 직접 강조하고자 한 것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피어나는 생명은 오직 하느님께로 부터만 오는 것이기에 그 생명을 사랑과 감사의 봉헌으로 그분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어머니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의 운명에 동참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 각자가 다른 가족들을 위해 살고 또한 그들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알며, 그들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각자의 특성에 따라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어미를 평안케 한다" (집회 3,6)

 

대학에 들어간 이후 큰 일은 아니지만 늘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청년단체들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봉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속모르는 남들은 대단하다, 훌륭하다 칭찬도 많이들 하시지만, 솔직히 많은 부분이 내 정신적 만족을 위한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뭔가 피곤하고 힘들 때면 집에서는 봉사하는 사람의 모습답지 못한 행동들만 보여드리게 된 적도 많았지요. ’밖에서 좋은 활동이니 봉사니 하면 무슨 소용이 있니? 집에서 제 행동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어느날 집에서 뭔가가 마음에 안들어 짜증을 부리다가 어머니께 들었던 한 마디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참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정말 부모님 마음 불편하지 않게 먼저 배려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생각을 오늘 다시 한번 해봅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아라" (집회 3,12)

 

제가 초등학교 학생일 때(그땐 국민학교라고 했지요. 그때가 벌써 언제던고 ) 어린 우리 남매와 어머닌 본당에서 나누어준 ’성가정을 위한 기도’를 매일 밤 함께 기도하고 하루를 마감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중얼대는 어린아이들과 젊은 어머니, 참 아름다운 장면이지요? 그렇게 엄마가 하자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던 순진한 어린애들은 머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자기주장(!)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종종 엄마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 놓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성서모임을 하고, 연수봉사를 하고, 남들 앞에선 사랑 운운하는 생활을 하면서 정작 부모님 앞에서는 별다를 바 없는 그 모습 그대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항상 내가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보다는 부모님이 나에게 얼마나 베풀어주시나 하는 것에만 민감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성가정 축일에 생각해보는 가정에 대한 자녀로서의 저 자신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어떤 젊은이들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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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가슴을 칩니다.

불평도 많았고 많이 미워도했습니다. 나도 용서하고 또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기쁜 때이니 그런 마음을 먹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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