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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아름다운 쉼터(구두도 즐겁겠구려(권영상, ‘뒤에 서는 기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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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12-23 ㅣ No.578

구두도 즐겁겠구려(권영상, ‘뒤에 서는 기쁨’ 중에서)

서부역 앞, 느티나무 교목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교목들이 흔들리는 푸른 그림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저쯤 낮은 벽 아래 구두를 닦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역사 앞 푸른 바람을 즐기며 쉬지 않고 솔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분에게 구두를 맡기고 싶었다. 나는 구두를 벗어 맡기고 노인이 권하는 의장에 앉았다. 노인은 내 구두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세상을 즐겁게 사시는구려.” 그랬다. 멈칫 놀라는 내게 다시 “신발 뒤축이 많이 닳았다는 뜻이유.” 그러며 짧게 웃었다.

“이 일을 얼마나 하셨지요?” 노인은 40년을 넘게 했단다. 순간 놀랐다. 남의 구두나 닦는 일에 생애를 따분하게 바칠 수 있다니! 그런 나의 속내를 느꼈는지 노인은 낡은 나무통에서 신문 한 조각을 꺼내 보였다. 그 노인을 취재한 ‘인생 40년 구두 닦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였다.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노인이 다 닦은 구두를 내 앞에 쓱 내놓았다.

“즐겁게 사시니 신발도 즐겁겠구려.”

속으로 ‘인사치레겠지.’하고 노인 곁을 떠났다.

전철에 올라탈 때쯤이었다. 그때서야 그분이 넌지시 해 준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 나에 대한 은근한 충고였음을. 구두를 닦으며 예순을 넘게 살아온 그분이 어찌 나의 사람됨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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