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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장 1절-14 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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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sjs88] 쪽지 캡슐

2002-12-29 ㅣ No.264

요아스의 유다 통치

 

 

 12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것은 일곱 살 때 일이었다.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은 예후 제 칠 년의 일이여\ㅓㅆ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출신으로 이름을 지비야라고 하였다. 요아스는 사제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아, 평생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다.  그러나 산당만은 없애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사르고 향을 피웠다.

   요아스가 사제들에게 지시하였다.    "사람들이 야훼의 성전을 위하여 의무적으로 바치는 헌금이나 자원하여 바치는 헌금이나간에 야훼의 전에 바치는 모든 거룩한 헌금은 사제들이 각기 담당 회계에게서 받아 두었다가 야훼의 전을 수리할 곳이 있으면 그 돈으로 모두 수리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요아스왕은 여호야다를 비롯하여 다른 사제들을 불러 놓고 일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성전을 수리하지 않고 있소?  이제부터 그대들은 회계원들에게서 돈을 받아 두지 말고 성전을 수리하는 데 쓰도록직접 내어 주시오."  사제들은 백성들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으려니와 성전 수리하는일도 맡지 않겠다고 하였다.

   사제 여호야다는 큰 궤짝 하나를 가져다가 뚜껑에 구멍을 내어, 야훼의 전 입구 오른쪽에 있는 기둥 옆에 놓아 두어 문을 지키는 사제드로 하여금 야훼의 성전에 들어 오는 모든 돈을 그 궤짝에 넣게 하였다.   궤짝 안에 돈이 많이 든 듯싶으면 왕의 비서와 대사제가 와서 야훼의 전에 있는 은을 쏟아 내어 세었다. 계산이 끝나면 그들은 그 돈을 야훼의 전 공사를 맡은 감독들에게 주었다.  다시 그 돈은 야훼의 전을 수리하는 데 쓸 재목과 석재르 ㄹ사거나 그 밖에 성전을 수리하는 모든 비용에 충당되었다. 그러나 야훼의 전을 수리하는 비용으로만 썼다. 일꾼들에게 줄 돈을 감독드에게 맡기고는 회계가사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이 정직하게 일했던 것이다. 보상제와 속죄제 대신 바친 돈을 야훼의 주너 수입으로 계산하지 않고 사제들의 몫으로 돌렸다.

    그 무렵, 시리아 왕 하자엘이 쳐들어 와 갓을 점령하고 나서 예루살렘을 치려고 발길을 돌렸다. 유다 왕 요아스는 자기 앞서 유다를 다스린 여호사밧왕과 여호람왕과 아핮야왕이 성별하여 바친 것들과 자기 자신이 야훼께 성벌하여 바친 모든 것에다가 성전 창고와 왕실 찰고에 있는 금까지 합하여 모드 시리아 왕 하자엘에게 보냈다.  그것을 받곻 하자엘은 예루살렘을치지 않고 떠나 갔다.

   요아스의 나머지 업적과 행적은 유다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신하들이 반역 음모를 꾸며 실라로 내려 가는 길목에 있는 벳밀로에서 요아스를 죽였다. 그 때 왕을 쳐죽인 사람은 그의 신하인 시므앗의 아들 요자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밧이었다. 그는 다윗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 곁에 안장되었다. 그의 뒤르 ㄹ이어 아마지야가 왕이 되었다.

 

 

여호아하즈의 아스라엘 통치

 

 13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아하지야의 아들 요아스 제이십 삼 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십 칠 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폈다.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죌 떨쳐 버리지 않고 그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에 분노를 터뜨리시어 이스라엘을 줄곧 시리아 왕 하자엘과 그이 아들 벤하닷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여호아하즈가 야훼께 용서를 빌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왕에게 시달리며 고생하는 모양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언할 사람을 내시어 시리아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 주셨다. 그리항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여로보암 가문의 죄만은 떨쳐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 갔다. 사마리아에는 아세라 목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야훼께서는 여호아하즈에게 겨우 기마병 오십 명, 병거 십 대,  보병 일만을 남겨 주셨다. 나머지는시리아 왕에게 발길에 채이는 먼지처럼 짓밟혔다.

   여호아하즈가 용맹을 떨치며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나머지 역사는 모두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사마리앙에서 십 육 년 동안 다스렸다. 그도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폈다.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떨쳐 버리지 않고 그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여호아스라 유다 와 아마시야와 싸우며 용맹을 떨친 일고 그 밖의 나머지  역사는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아스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 가 사마리아에 있는 왕실묘지에 안장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여로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엘리사의 죽음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엘리사 있는 곳으로 내려 와서 얼굴을 비비며 통곡하였다. 그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하고 외치자 엘리사가 왕에게 말하였다.    "활과 화살을 가져오십시오"   왕이 활과 화살을 가져오자,   "화살을 메워 당기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왕이 활을 당기자 엘리사는 자기의 손을 왕의 손에 얹고   "동녘 창을 여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창을 열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쏘십시오."   왕이 할을 쏘았다. 그러자 엘리사가    "그 화살로 야훼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 호살로 시리아를 쳐 이기실 것입니다.임금님께서는 아벡에서 시리아군을 여지없이 쳐부수실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 또다시 왕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하였다. 앙이 화살을 잡자, 그 화살로 땨ㅏㅇ을 치락 하였다. 왕은 땅을 세 번 치고 그쳤다. 그러자 하느님의 사람이 왕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대여섯 번 쳤으면, 시리아군을 여지없이 쳐 부수셨을 터인데, 세 번만 쳤으니 시리아군을 세 번밖에는 쳐부수지 못하겠읍니다."  이 말을 하고 엘리사는 숨을 거두어 안장되었다.

   그즈음 모압 강도떼가 히마다 이스라엘 영토 안으로 쳐들어 왔는데, 한번은 어떤 사람들이 시체를 묻으려다가 그 강도떼들을 만나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 속에 던지고 달아났다. 그런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나서 일어섰다.

   시리아 왕 하자엘은 여호아하즈가 다스리는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곱혔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자비를 베푸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당신 백성에게로 마음을 돌리셨던 것이다. 그들을 아직은 멸망시키실 마음이 없으셨으므로 당신 앞에서 쫓아 내지 않으셨다. 시리아 왕 하자엘이 죽자 그의 아들 벤하닷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 틈을 타서 여호아스는 선와 여호아하즈가 하자엘에게 전쟁 중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탈환하였다. 여호아스는 벤하닷을 세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탈환하였다.

 

 

아마지야의 유다 통치

 

 14 요아스이 아들 아마지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즈의 아들 여호아스 제이 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십 오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ㅠ살렘에서 이십 구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어ㅖ루살렘 출신으로 이름을 여호아띤이라 하였다. 그는 야훼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고 부왕 요아스에 못지 않게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지만, 선조 도윗과 같지는 못하였다. 산당을 철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희생제르 드리고 향을 피웠던 것이다. 그는 왕권이 튼튼하게 되자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 살인자들의 자손들은 죽이지 않았다. 그는 모세의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야훼의 명령을 따랐던 것이다.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이지 못하고 아비의 잘모 때문에 자식을 죽이지 못한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소금 골짜ㅓ기에서 에돔군 일만을 무찌르고 셀라를 점령한 잔본인이 바로 그였다. 그는 그 곳을 욕드엘이라 불렀는데 아직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 무렵 아마지야가 예후의 손자이며 여호아하즈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 여호야스는 유다  왕 아마지야에게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송백엑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청혼하였다가 지나가던 레바논의 들짐승에게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대는 에돔을 쳐 이겼다고 하여 목에 힘을 주고 우쭐거리는데, 혼자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 어찌하여 그대의 신세와 유다의 운명을 망치려고 스스로 설치는가?"

   그러나 아마지야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와 유다의 영토인  벳세메스에서 유다 왕 아마지야와 맞 붙었다.  유다군은 이스라엘군에게 패하여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도망쳤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아하지야의 손자이며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지야를 벳세메스에서 사로잡았으며, 예루살렘에 이르러 에브라임 성문과 모퉁이 성문 사이의 성벽을 사백 척이나 헐었다. 그는 야훼의 전과 왕실 금고에 있는 금은과 세간을 닥치는 대로 다 털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 갔다.

   여호아스의 나머지 업적과 그의 치적 및 공족, 유다 왕 아마지야와의 전쟁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ㅆ다. 여호아스는 숨을 거두어 사마리아에 있는 왕실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이 아들 여로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는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즈의 아들 여호아스보다 십 오 년을 더 살았다. 아마지야의 나머지 역사는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마지야는 라기스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라기스까지 쫓아 가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의 시체만은 말에 실어 예루살렘으로 모셔다가 다윗성에 있는 왕실묘지에 안장시켰다. 온 유다 백성이 나이 십 육 세인 우찌야를 택하여 부왕 아마지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이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 돌아 간 다음 엘랏을 찾아 유다의 한 성으로 재건한 장본인이 우찌야다.

 

 

여로보암 (2세) 의 이스라엘 통치

 

   여호아스이 아들 여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 제십 오 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사십 일 년간 다스렸다. 그는 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뜨렸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고 그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은 것은 그 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종인 예언자 요나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요나는갓헤벨 출신으로서 아미때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이스라엘이 고생이 막심한 것을 야훼께서 눈여겨 보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나 자유인이나 할 것 없이 고생하고 있으며 도와 줄 이도 없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지 않기로 하시고 요아스이 아들 여로보암을 시켜 이스라엘을 구원하ㅕㅆ다.

   여로보암의 나머지 업적과 치적, 공적 그리고 그가 치른 전쟁 및 유다에 빼앗겼던 다마스커스와 하맛을 탈환한 것 등은 모두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돠어 있다. 여로보암이 선조들과 함께 잠들어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곁에 안장되자 그의 아들 즈가리야갸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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