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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36,24-28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해설 1032_heart 969_토미즘학습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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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3 ㅣ No.160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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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15일] 

입문 게시자 주 1: "특정 개념들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글자를, "마음" 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하기 위하여서였지, 그 역을 위하여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즉,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와 이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 "한 가운데" 등의, 여러 파생 의미들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한자 단어 "心" 글자 대신에,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을 사용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달리 말하여, "心(심장)" 이라는 상형 문자는, 이미 우리들의 기억에 주입된 "마음 심" 이라는 방향성을 가지는 한 개의 연상(an association)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을 연상하게 하나, 그러나, 역으로, "마음" 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는, 이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의미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心(심장)" 을 연상하게 하지 못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지금 지적한 바에 관하여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과 "심장"에 대한 설명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heart)" 과 "마음(mind)" 사이에, 우리말로의 번역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 단어들 "heart" 와 "mind" 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의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ionality)을,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과정에서 충실하게 보존하여 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차용 번역 용어들이 아닌 우리말 단어들인 "심장" 과 "마음"에 대하여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들 우리말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우선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는, 어느 특정 언어에 종속되는 문제가 아니고, 언어 이전에 언어를 통하여 전달될 대상들인, 논리(logic)의 단계에 있는개념들 사이 존재하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心臟, heart)""마음(mind)" 의 차이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이상, 입문 게시자 주 1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1. 들어가면서

다음은, 2003년 9월 10일 수요일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으로 주어진, 매달 네 번째 토요일 성무일도/시간경 아침기도 중에 바치게 되는(*) 에제키엘서 36,24-28 찬가(Canticle)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해설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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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지금 말씀드린 바에 대한 더 자세한 안내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부록 <성무일도에 대하여> 를 보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8일]

(**) 번역자 주: 특히 에제키엘서 36,24-28에 대한 (i)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과 (ii) 유관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들이 일관성을 유지함을, 즉, 동일한 주제 아래에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독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주된 근거가, 이들 두 문헌들에서 영어로 "heart" 번역되는 표현을, 그 자구적 어의/의미(literal sense)가 온전하게 보존되면서 전달될 수 있도(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6항)"심장" 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함에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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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psalter/jp2_b16_commentaries.htm

출처 2: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2003/documents/
hf_jp-ii_aud_20030910_en.html

출처 3: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14-08-23&stype=mo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GENERAL AUDIENCE OF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의 일반 알현

Wednesday, 10 September 2003

2003년 9월 10일 수요일

 

 

Canticle of Ezekiel 36: 24-28

에제키엘서 36,24-28 찬가
"I will be your God!'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1. The Canticle that has just echoed in our ears and hearts was composed by one of the great prophets of Israel, Ezekiel, a witness of one of the most tragic ages the Jewish people lived through: the destruction of the Kingdom of Judea and its capital, Jerusalem, followed by the bitter exile in Babylon (sixth century B.C.). The passage that has become part of the Christian prayer of Lauds is an extract from chapter 36 of Ezekiel.

 

1. 우리의 귀(ears)들과 심장(hearts)들에 방금 이미 반향되었던 찬가는, 유다 백성이 살아 남았던 다음과 같은 가장 비극적인 시대에 대한 한 명의 목격자인,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들 중에서 한 명인, 에제키엘(Ezekiel)에 의하여 작문되었습니다(was composed): 바빌론(Babylon) 쪽으로 쓰라린 유배가 뒤따르는 유다 왕국과 그 수도인 예루살렘의 파괴(기원전 6세기). 아침 기도(Lauds) 중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의 일부가 이미 되어버린 이 구절은 에제키엘서 제36장으로부터의 한 발췌입니다.

 

The context of this passage, transformed into a liturgical hymn, seeks to capture the deep meaning of the tragedy that the people lived in those years. The sin of idolatry had contaminated the land that the Lord had given to Israel as an inheritance. In the final analysis it was this more than anything else that was responsible for the loss of the homeland and dispersal among the nations. In fact, God is not indifferent to good and evil; he enters the history of humanity mysteriously with his judgment that sooner or later unmasks evil, defends its victims and points out the way of justice.

 

한 개의 전례 찬미가(a liturgical hymn)로 변환된 바로 이 구절의 문맥은, 이 백성이 바로 그러한 해들에 살았던, 이 비극의 깊은 의미를 붙잡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우상 숭배(idolatry)라는 죄는, 주님께서 한 개의 상속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셨던, 그 땅을 이미 오염시켰습니다. 최종 분석에 있어 고향땅의 상실과 나라들 사이에 흩어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한 바로 이것[즉, 우상 숭배]이었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선(good)과 악(evil)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셨으며,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조만간 악(evil)의 가면을 벗기는 당신의 판단과 함께, 신비롭게 인류의 역사에 들어오시어, 그 피해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리고 정의(justice)의 길을 가리키십니다. 

 

2. However, the goal of God's action is never the ruin, the pure and simple condemnation or elimination, of the sinner. It was the Prophet Ezekiel himself who cited these divine words: "Have I any pleasure in the death of the wicked, and not rather that he should turn from his way and live?... For I hav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anyone; so return, and live" (18: 22, 32).

 

2. 그러나, 하느님의 행동의 목적(goal)은, 죄인의, 전적으로 비난 혹은 제거인, 파멸이 결코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들을 외쳤던 자는 바로 에제키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은 악인(the wicked)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에제키엘 18,22.32).

 

In this light we can understand the meaning of our Canticle that is filled with hope and salvation. After purification through trial and suffering, the dawn of a new era is about to break, as the Prophet Jeremiah had already announced, speaking of a "new covenant" between the Lord and Israel (cf. Jer 31: 31-34). Ezekiel himself, in chapter 11 of his prophetic book, had proclaimed these divine words: "I will give them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within them; I will take the stony heart out of their flesh, and give them a heart of flesh, that they may walk in my statutes and keep my ordinances and obey them; and they sha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their God" (11: 19-20).

 

바로 이 빛 안에서 우리는 희망(hope)과 구원(salvation)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찬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Jeremiah)가,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한 개의 "새 계약(new covenant)"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미 선포하였듯이(예레미야 31, 31-34 참조), 시험과 고통받음을 통한 정화 후에, 한 개의 새 시대의 새벽이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에게키엘 자신은, 자신의 예언서의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들을 이미 선포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한 개의 새 심장(a new heart)을 넣어주고, 그들 안에 한 개의 새 영(a new spirit)을 넣어 주겠다. 나는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심장(the stony heart)을 치워 버리고 한 개의 살로 된 심장(a heart of flesh)을 넣어 주어, 그들이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그대로 지키게 하겠다." (에제키엘 11,19-20).

 

In our Canticle (cf. Ez 36: 24-28), the prophet takes up this oracle and completes it with a marvellous explanation: the "new spirit" given by God to the children of his people will be his Spirit, the Spirit of God himself (cf. v. 27).

 

우리의 찬가(에제키엘 36,24-28 참조)에서, 이 예언자는 바로 이 신탁을 들어 올이고 그리고 이것을 다음과 같은 한 개의 놀라운 설명과 함께 완료합니다(completes): 하느님에 의하여 당신의 백성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이 "새 영(new spirit)"은 장차, 하느님 당신 자신의 거룩한 영인, 당신의 거룩한 영(his Spirit)일 것입니다(에제키엘 36,27 참조).

 

3. Thus, not only is a purification proclaimed, expressed in the sign of the water that washes away the stains on the conscience. There is not only the aspect of liberation from evil and sin (cf. v. 25), necessary though it may be. Ezekiel's message stresses another, far more surprising aspect: humanity is, in fact, destined to be born to new life. The first symbol is that of the "heart" which, in biblical language, suggests interiority, the personal conscience. God will tear from our breasts the "heart of stone" that is cold and hard, a sign of the persistence of evil. Into them he will put a "heart of flesh", that is, a source of life and love (cf. v. 26). The life-giving spirit that brought creatures to life in the creation (cf. Gn 2: 7), will be replaced in the new economy of grace by the Holy Spirit, who sustains us, moves and guides us toward the light of truth and pours out "God's love... into our hearts" (Rom 5: 5).

 

3. 따라서, 양심(conscience)에 있는 오점들을 씻어 없애는 물이라는 표지(sign)로 표현되는, 선포된 어떤 정화(a purification)만이 오로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evil)과 죄(sin)로부터 해방(liberation)의 양상(aspect)만이(에제키엘 36,25 참조), 비록 그것이 필요할 것이지만, 오로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제키엘의 메시지는, 훨씬 더 놀라운 양상인, 다음과 같은 또다른 양상을 강조합니다: 인류가, 사실은, 새 생명(new life) 쪽으로 태어나게 될 운명입니다. 이 또다른 양상의 으뜸(primo) 표상(表象)/상징(象徵)(symbol)(*1) "심장(心臟, heart)" 이라는 바로 이 표상(表象)/상징(象徵)인데, 심장은, 성경 언어에 있어, 인격의 양심(the personal conscience)인, 내면성(interiority)에 대한 언급입니다(suggests)(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7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슴(breasts)들로부터, 악의 지속성(persistence of evil)에 대한 한 개의 표지(標識)(a sign)인, 차갑고 굳은, "돌로 된 심장(heart of stone)"을 장차 떼어내실(tear) 것입니다. 이 가슴들 안쪽에 당신께서는 한 개의 "살로 된 심장(heart of flesh)"을, 즉, 생명과 사랑의 원천 한 개(a source of life and love) 장차 넣으실(put) 것입니다(에제키엘 36,26 참조).(*2) 창조에서 피조물들을 생명으로 이르게 하였던 생명을 주는 영(the life-giving spirit)은(창세 2,7 참조) 은총(grace)의 새 경륜(經綸)(the new economy of grace) 안에서, 우리를 떠받치시고, 진리의 빛을 향하여 우리를 움직이시고 그리고 인도하시는 그리고 "우리의 심장(心臟, hearts)들 안쪽으로 ... 하느님의 사랑"(로마 5,5)(*3)을 쏟아 내시는 분이신, 성령(the Holy Spirit)으로 장차 교체될 것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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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ymbol"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들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6.htm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8일]

(*2) 번역자 주:

(1) 바로 이 문장의 성경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에제키엘서 36,26은,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68항의 성경 근거이기도 하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1s2c1p6.htm#368

(발췌 시작)

368 The spiritual tradition of the Church also emphasizes the heart, in the biblical sense of the depths of one's being, where the person decides for or against God.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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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Cf. Jer 31:33; Deut 6:5; 29:3; Isa 29:13; Ezek 36:26; Mt 6:21; Lk 8:15; Rom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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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교회의 영적 전통(spiritual tradition)은 또한, 거기에서 인격(the person)이 하느님을 지지함을 혹은 반대함을 결정하는, 당사자의 있음(one's being)의 깊은 곳(depths)이라는 성경 의미(biblical sense)로, 심장(heart)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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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Cf. 예레미야 31,33; 신명 6,5; 29:3; 이사야 29,13; 에제키엘 36,26; 마태오 6,21; 루카 8,15; 로마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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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2) 바로 이들 앞의 세 개의 문장들에서, 영어로 "the heart" 로 번역되는 표현은, "심장" 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slation)이 되는 대신에, 결코 "마음"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될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왜냐하면,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떼어내거나(tear) 혹은 넣을(put)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 아니고, "우리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의역 번역의 문제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의 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3) 번역자 주: 로마서 5,5에서 발췌된 이 구절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예수 성심 대축일 제2독서(로마 5,5ㄴ-11)가해 사순 제3주일 제2독서(로마 5,1-2.5-8)에 포함된다. 다음에 있는 이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heart.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lent_3.htm [우리말 번역문]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18일]

또한, 예수님의 성스러운 심장(성심, the Sacred Heart of Jesus) 쪽으로 공경/경례(敬禮)(devotion)에 있어서의 성심이 바로 예수님 신체의 심장(the physical heart of Jesus)임에 대하여 여러 번 명기하고 있는, 로마서 5,5를 발췌하여 인용하고 있는 비오 12세 교황님의 1956년 5월 15일자 회칙[제목: HAURIETIS AQUAS(물을 길으리라)]제5항과 이 항의 마지막 문장에 주어진 번역자 주들을 꼭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이상,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8일]

(*4) 번역자 주:

(1) 바로 이 부분은, 에제키엘서 36, 25-28 등을 그 성경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15항의 첫 번째 문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이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1s2c3a8.htm#715

(발췌 시작)
715 The prophetic texts that directly concern the sending of the Holy Spirit are oracles by which God speaks to the heart of his people in the language of the promise, with the accents of "love and fidelity."85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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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Cf. Ezek 11:19; 36:25-28; 37:1-14; Jer 31:31-34; and cf. Joel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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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성령의 파견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예언서 본문들은, 그것에 의하여 하느님께서, "사랑과 충실(love and fidelity)"의 말투와 함께, 약속의 언어로 당신의 백성의 심장(heart)에 말씀하시는, [다음의 각주의] 신탁(oracles)들입니다.85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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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Cf. 에제키엘 11,19; 36,25-28; 37,1-14; 예레미야 31,31-34; cf. 요엘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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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또한 바로 이 부분은, 에제키엘서 36, 25-27 등을 그 성경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87항의 첫 번째 문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이다. 최소한도의 유관 문맥 안에서의 좀 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86항부터 읽을 것을 권고드린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2s2c1a2.htm#1287

(발췌 시작)

1287 This fullness of the Spirit was not to remain uniquely the Messiah's, but was to be communicated to the whole messianic people.94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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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Cf. Ezek 36:25-27; Joel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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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성령의 바로 이러한 충만함은 메시아의 것으로만 유일하게(uniquely)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메시아 시대의 백성(the whold messianic people)에게 나누어주기로(be communicated)(#) 되어있었습니다.94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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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Cf. 에제키엘 36,25-27; 요엘 3,1-2.

 

(#) 번역자 주: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 "통공(하나 됨, communion, communio)"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의 동사형인 "나누어 주다(communicate)"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9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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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또한 바로 이 부분은, 에제키엘서 36, 26-27 을 그 성경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32항의 첫 번째 문장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32항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로 연결된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2s2c2a4.htm#1432

(발췌 시작)

1432 The human heart is heavy and hardened. God must give man a new heart.25 Conversion is first of all a work of the grace of God who makes our hearts return to him: "Restore us to thyself, O LORD, that we may be restored!"26 God gives us the strength to begin anew. It is in discovering the greatness of God's love that our heart is shaken by the horror and weight of sin and begins to fear offending God by sin and being separated from him. The human heart is converted by looking upon him whom our sins have pierced:27


          Let us fix our eyes on Christ's blood and understand how precious it is to his Father,

          for, poured out for our salvation it has brought to the whole world the grace of

          repen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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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f. Ezek 36:26-27.
26 Lam 5:21.
27 Cf. Jn 19:37; Zech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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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은 무겁고 그리고 굳어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한 개의 새 심장(a new heart)을 주셔야 합니다.25 귀의/회심(conversion)은 무엇보다도 먼저, 다음과 같이 우리의 심장(hearts)을 당신께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분이신, 하느님의 은총(#)의 일 한 개(a work of the grace of God)입니다: '오 주님이시어, 저희가 회복될 수 있도록 당신 자신께로 저희를 회복시키소서!'26 우리의 심장(heart)이 죄(sin)에 대한 혐오와 무게에 의하여 흔들리게 되고 그리하여 죄에 의하여 하느님을 거스름(offending)과 그리하여 당신으로부터 분리됨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love)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우리의 죄들이 이미 찔렀던(have pierced), 당신을 향하여 바라봄으로써(by looking upon) 변하게 됩니다(is converted).27

 

           우리의 눈들을 그리스도의 피에 고정하고 그리고 당신의 성부께 이 피가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이해하도록 합시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흘러나오게 됨으로써

           이 피가 전체 세상에 회개의 은총(the grace of repentance)을 이미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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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f. 에제키엘 36,26-27.
26 애가 5,21.
27 Cf. 요한 19,37; 즈카르야 12,10.

 

(#) 번역자 주: "하느님의 은총" 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그리스도교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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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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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us will emerge that "new creation" which St Paul was to describe (cf. II Cor 5: 17; Gal 6: 15), when the "old self" in us, the "sinful body", would pass away, so that "we might no longer be enslaved to sin" (Rom 6: 6), but new creatures, transformed by the Spirit of the risen Christ: "You have put off the old nature with its practices and have put on the new nature, which is being renewed in knowledge after the image of its Creator" (Col 3: 9-10; cf. Rom 6: 6). The prophet Ezekiel proclaims a new people which the New Testament would see as having been gathered together by God himself through the work of his Son. This community, possessing "a heart of flesh" and imbued with the "Spirit", would experience the living and active presence of God himself, who would enliven believers, acting in them with his efficacious grace. "All who keep his commandments abide in him", St John was to say, "and he in them. And by this we know that he abides in us, by the Spirit which he has given us" (I Jn 3: 24).

 

4.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죄 많은 몸"인, 우리 안에 있는 "옛 자아(old self)"가 끝날,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될"(로마 6,6),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new creatures)들(2코린토 5,17)이 될, 때인, 성 바오로(St. Paul)가 묘사하기로 되어있었던 바로 그 "새 창조(new creation)"(*)가 장차 나올 것입니다(will emerge): "여러분은 옛 본성(the old nature)을 그 행실들과 함께 이미 벗어 버렸으며 그리고, 그 창조주의 모습을 본받는 지식으로(in knowledge) 새롭게 됨을 말하는, 새 본성the new nature)을 이미 입었습니다" (콜로새 3,9-10; 그리고 로마 6,6 참조). 예언자 에제키엘은, 당신의 아드님의 일(work)을 통하여 하느님 당신 자신에 의하여 이미 함께 모아진 것으로서 신약(the New Testament)이 발생시킬(would see), 하나의 새 백성(a new people)을 선포합니다. "살로 된 심장 한 개(a heart of flesh)"를 소유한(possessing) 그리고 이 "거룩한 영(Spirit)"으로 고취된(imbued with) 바로 이 공동체는, 당신의 효능있는 은총(grace)으로 그들에게 작용하심으로써(acting) 믿는 이(believers)들을 활기 있게 만드실 분이신, 하느님 당신 자신의 살아 계시는 그리고 활동하시는 현존을 경험할 것입니다. 성 요한(St. John)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모두는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리고 그분께서도 그들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셨던 바로 그 성령에 의하여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요한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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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새 창조" 라는 용어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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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Let us end our meditation on the Canticle of Ezekiel by listening to St Cyril of Jerusalem who, in his Third Baptismal Catechesis, delineates in this prophetic passage the people of Christian Baptism.

 

5. 에제키엘의 찬가에 대한 묵상(meditation)을, 자신의 저술인 Third Baptismal Catechesis 에서 바로 이 예언의 구절 안에서 그리스도교 세례로 이루어진 백성을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t. Cyril of Jerusalem, 313년경-386년)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끝맺도록 합시다.

 

"Through Baptism", he recalls, "all sins are forgiven, even the most serious transgressions". The Bishop therefore says to his listeners: "Have faith, Jerusalem, the Lord will remove your wickedness from you (cf. Zep 3: 14-15). The Lord will cleanse you from your misdeeds...; he "will sprinkle clean water upon you, and you shall be clean from all your uncleannesses' (Ez 36: 25). The angels will encircle you rejoicing and they will soon sing: "Who is that coming up from the wilderness', immaculate, and "leaning upon her beloved?' (Sg 8: 5). In fact, it is the soul, formerly a slave and now free to address as her adopted brother her Lord, who says to her, accepting her sincere resolution, "Behold, you are beautiful, beautiful!' (Sg 4: 1).... Thus, he exclaims, alluding to the fruits of a confession made with a clear conscience,... may heaven deign that you all... keep alive the remembrance of these words and draw fruits from them, expressing them in holy deeds in order to present yourselves faultless before the mystical Bridegroom and obtain from the Fathe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n. 16; Le Catechesi, Rome 1993, pp. 79-80).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들은, 심지어 가장 심각한 침범(transgressions)들도, 용서됩니다." 라고 그가 상기시킵니다. 이 주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therefore) 자신의 청중들에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이여, 신앙(faith)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로부터 여러분들의 사악함(wickedness)을 장차 제거하실 것입니다(스바니야 3,14-15 참조).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비행(misdeeds)들로부터 여러분을 장차 씻어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러분 위에 정결한 물을 장차 뿌리실 것이며, 그리하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불결함 모두로부터 장차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에제키엘 36,25). 천사들은 환호하면서 여러분을 장차 둘러 쌀 것이며 그리고 그들은 조만간 다음을 노래할 것입니다: "오점 없는(immaculate), 그리고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아가 8,5) 광야로부터 가까이 오는 바로 그자는 누구일까요?" 사실, 그자는, 이전에 한 명의 노예였으나 그러나 이제 자신의 입양된 형제로서의 자신의 주님을 부르는 것이 자유로운(free), 영혼(the soul)인데, 주님께서는, 이 영혼의 진솔한 결심을 받아들이시면서, 이 영혼에게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아름답구려!" (아가 4,1) 라고 말씀하십니다. ...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thus), 그분께서는, 한 개의 분명한 양심과 함께 행해졌던 한 개의 고백의 열매들을 암시하시면서, ... 여러분 모두가 ... 이들 말들에 대한 기억을 꺼지지 않게 하고(keep alive) 그리하여 그들로부터 열매들을 도출하는 것을 하늘이 허락하소서(may heaven deign) 라고 외치시는데, 이 외침은, 신비의 신부(the mystical Bridegroom) 앞에 결함 없는 여러분들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그리하여 성부로부터 여러분의 죄들에 대한 용서를 획득하기 위하여, 거룩한 업적(holy deeds)들로 그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n. 16; Le Catechesi, Rome 1993, pp. 79-80).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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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7시간 (자료 조사 및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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