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성당 게시판

활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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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blasius] 쪽지 캡슐

2000-01-14 ㅣ No.262

활주도 없이

           --- 나희덕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창문 너머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활주로 위에 찍힌 하나의 점으로만 보였다. 그지없이 작고 흰 날개, 마치 농담처럼 풍경 속에 날아든 그것은 거대한 비행기의 날개 아래 엎드려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잿빛 활주로 위에 나비라니, 시위를 떠나기 직전의 화살처럼 비행기들 사이에서 제 날개를 긴장시키고 있는 한 마니 나비라니...........

 

비행기는 활주를 시작했다. 몸을 공중에 띄우기 위하여 무서운 속력을 내는 기체의 흔들림과 굉음 속에서, 날면서도 날개를 퍼덕일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속에서, 나는 내내 나비 한 마리를 생각했다. 활주로 위에 웅크리고 있던 나비, 그러나 그는 활주도 없이 사뿐히 날아올라 잿빛의 대륙을 유유히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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