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투병 이원규씨 成大서 눈물의 박사학위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 온몸 근육이 굳어지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일명 루게릭병)에 걸려 6년째 투병 중인 40대 교사가 손가락 하나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논문을 쓴 끝에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5일 열린 성균관대 학위수여식에서 이원규 (李苑圭·45)씨가 휠체어를 탄 채 학위를 받을 때, 그의 손발이 되어준 아내 이희엽(41·초등학교교사)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지난 85년부터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유머 있는 선생님’이고 감기 한번 안 걸렸던 이씨는 1999년 말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대부분의 환자가 발병 후 몇년 내에 의식은 멀쩡한 채 팔다리도 못 쓰고, 언어능력도 상실해 끝내 사망하게 되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병이다.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고 있는 병이기도 하다.
평생 가르치고 배우고 살고 싶던 이씨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수업 때 영어발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꾸만 영어발음이 샐 땐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던 그는 작은 마이크를 옷깃에 꽂고 꼿꼿하게 교단에 섰다.
이씨는 2000년 8월 성균관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데 이어 박사과정에도 도전했다. 평생 매달려 왔던 문학을 죽기 전에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지용·백석·오장환·이용악 등 1930년대와 40년대 시인(詩人)들의 고향의식을 주제로 삼았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박사과정 연구를 하고,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바쁜 생활을 계속했다. 이씨는 그 와중에도 ‘치유! 루게릭을 이겨냅시다’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요즘도 ‘외국의 치유사례’를 루게릭협회와 자신이 운영하는 한국루게릭병연구소 홈페이지(http://www.alsfree.org)에 올린다. 이씨의 치료를 맡았던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광우 교수는 “이씨는 의사보다도 더 환자나 보호자에게 희망이 되는 환자”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그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다니던 학교도 휴직했다. 혼자서는 화장실에 갈 수도, 몸을 일으킬 수도 없게 됐다. 하지만 논문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국내 1300명의 루게릭병 환자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논문지도를 맡은 강우식 교수는 “처음엔 생명이 오락가락하는데 무슨 공부냐고 했으나 꼼꼼한 이씨의 논문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만으로 키보드를 찍었고, 발가락 사이에 책장을 끼워 넘겨 독서를 했다. 남들은 10분이면 작성할 수 있는 문서를 완성하는 데 2~3시간씩 걸렸다.
이씨는 논문 완성을 가족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졸업소감문에 “사랑하는 아내가 없이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소감문을 대신 읽어 내려가던 아내는 “남편이야말로 나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며 울었다.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며 울먹이는 큰아들 진우(13)군도 아빠와 함께하는 아침기도를 빠뜨리지 않는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부부는 가끔 풍경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부인이 차를 떠 먹여 줘야 한다. 그곳에서 부부는 “세상에 낫지 못할 병은 없다”고 말하며 눈을 맞춘다. 하지만 개학하면 학교로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혼자 집에 있을 남편 생각에 한숨이 늘었다. 그럴 때면 이씨는 “괜찮다”며 아내를 향해 얼굴을 찡그린다.
논문을 마친 이씨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리운 교단에 다시 서는 것이다. 그는 “호킹 박사처럼 음성변환장치를 사용해 대학이든 일반강의든 어느 곳에서든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김정훈기자 runto@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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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임미진 기자.신동연] ▶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만 간신히 움직이는 이원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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