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반 게시판

감사드립니다. 인사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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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국 [petertel] 쪽지 캡슐

2000-11-05 ㅣ No.950

연중 제 31주일 송파동 성당의 첫미사를 감사와 축하가운데 거행하였다.

새성당을 분당하도록 애쓰신

 

존경하는 한 토마신부님과

모든 은인들에게 저도 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토요일 아침, 든든한 인사를 건네신 할머니와

모든 신천동 교우분 들에게도 제 나름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허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여러분들중 한 할머니와의 단상 한 자락을

소개해 드립니다.

 

"내일부터는 안나오지요 ?"

"네 ?"

"내일부터는 송파동으로 가지요 ?   아침에 보면, 든든했는데 !"

 

자세히 뵈니 아침미사에 걸르시지 않는

해맑은 눈빛의 조용한 할머니이시다.

오랜만에 느껴본 해 맑은 눈 빛이시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 특유의 깨끗한 눈 빛 말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화요일과 목요일아침에는 신천동으로 옵니다. 뵐 수 있지요."

 

토요일 아침미사를 끝내고 마당에서 막 나오는데

한 할머니께서 막으시며 겐네시는 말씀이다.

 

나는 할머니를 좋아한다.

외조모 님께서는 아주 씩씩하셨는데

대가집 살림을 하셨고 마흔이 좀 넘어 혼자되셨다.  

어려서 서울에 유학(?)하며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시골을 다녀 오시 면서는

외손주의 챙피하다고 툴툴거리는 투정에도 양손에, 머리에

많은 것을 이고, 들고 다니셨다.

물론 그 때의 부모님들이 다 그러셨지만

이모님의 결혼식장에서의 모습도 합쳐져 그런 기억이 됐을 것 같다.

딸을 출가시키는 엄마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많이 봤는데

할머니의 눈에는 그런 빛이 없었다.

중학생 때였는데 궁금했다.

 

"할머니는 왜 안 울어요?"

"왜 우니,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러 가는데" 하시며

명동성당에 축하하러 오신 이웃과 반갑게 인사하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결혼 후 언젠가 에스텔과 외가집에 들리러 갔는데

사당동 빈터에 푸성귀를 가꾸는 꼬부라진 할머니가 있기에

"골목을 잘못 들어 왔나봐 했지만"

어느새 할머니는 꼬부라져 계셨다.

 

십 여년 전 88세로 성모성월의 한가운데 날 선종 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묵주기도를 하시며

교회를 위하여

세계평화를 위하여,

등등의 기도를 하셨는데

젊은 나보다 훨씬 더 큰 지향과 주제를 갖고 기도를 하셨다.

말미에는 꼼꼼히 적어놓은 식구와 외증손주들 까지의 명단을 펴놓고,

기억하며 기도를 마치셨다.

할머니의 그 해맑고 새까만 눈빛이 지금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다.

 

외할아버님의 왕생극락을 위해 부탁한 시주 중의 불의를 본 연후 동란전

입교하셨을 땐 동네에서 존경을 받으셨던 분의 입교를 축하하려

박수에 인색했던 시골성당에서 많은 박수도 받으셨단다.

 

할머니의 해맑은 눈빛을 어제 그 할머니에게서 다시 본 것 같아

새롭게 수산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기도를 열심히 하신 할머니 기도의 힘으로

나도 어긋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기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들에게 기도를 바로 전해주곤 있는지?

 

어제 아침에 만난

맑고 깨끗한 그 할머니의 눈빛에서도 열심한 기도의 세월이 보여진다.

인생의 그 오랜 역정들 속에서의 모든 경험과 경험들을

기도의 힘으로 떠 바치고 있는 것을 보는 것 같다.

 

할머님들 그리고 할아버님들

영육 간에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의 충만한 사랑 가득 받으세요.

또한 모든교우분들께도 함께.

 

조베드로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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