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대입을 한 해 미뤄야하는 딸을 바라보며...

인쇄

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6-02-15 ㅣ No.6447

지난 겨울은,

혹독한 추위와 많은 눈을 뿌렸지만,

딸과 나는 대학 입시라는 중대사를 겪으며,

감각 없는 겨울을 보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우리 아이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입시라지만,

지금 단언해도 그리 무리가 없을 듯싶다.


수시라는 기회와 정시라는 기회를 통해서,

총 여덟 군데의 대학에 원서를 냈고,

시간차 공격과도 같이,

하나씩 불합격의 결과를 확인하였다.


본인도 본인이려니와,

내가 스스로 겪는 상심이 생각보다 몹시 컸다.

물론 아이에게 내색 않으려고,

씩씩한 듯 웃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 웃음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그 아이도 아마 알았을 거다.


수험생을 위한 기도로

시작된 이 아이의 수험 뒷바라지는,

아이에게 좋은 학교보다는 사람됨을 알게 해달라고 했지만,

결과에 뜨악해 지는 걸 보면,

나는 그동안 과연 주님과 무슨 말을 주고받았더란 말인가.


‘네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지금 그 아이의 진학이 아니고,

사람됨을 알도록 하는 게 아니었더냐......’


‘......맞...아...요......’


‘그런데, 지금의 너의 태도는 뭐란 말이냐......’


‘......’



참으로 신기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몫이라 여겨지는 마음이다.

아이에게 이야기하니,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오히려, 용기를 주려고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는,

어떻게 재수를 시키나 걱정이 많았었는데,

막상 1년을 유예한다고 생각하니,

부족했던 것들을 잘 보완하면,

해 볼만 하다는 뜻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아마도 기도가 준 선물인가보다.

중계동성당과 용산성당의 모든 수험생들은,

우리 딸과 같은 가장 좋은 몫으로

각자의 인생여정의 한 기로를 막 들어서고 있으리라.


원서를 쓰고 준비하면서,

나는 몇 차례의 심한 몸살과 가슴앓이도 겪었지만,

평심으로 돌아오는 데에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 너무나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합해주셨는데, 우리 딸은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얼굴을 내어 놓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또 혹시 추가 합격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구요.  지난주일 미사 중에 불현듯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도가 그냥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지 않습니까?  게다가 공동체의 기도였는데 말입니다. 분명히 이게 가장 좋은 몫일 거라는 걸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6 4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