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성당 게시판

[퍼온 글]사제의 길50년, 팔순의 김수환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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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fromrahel] 쪽지 캡슐

2001-06-10 ㅣ No.988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공식 미사가 끝나자마자 한 윤락촌으로 향했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매춘여성의 집이었다. 그가 설마 추기경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한 이곳 여성들은 그를 어느 할아버지와 다름없이 대하며, 담배를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손녀딸같은 이들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며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이들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김 추기경을 가까이에서 보필한 몇몇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인간 김수환’의 일화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그가 종교지도자의 권위를 넘어 국민들에게 따뜻한 아저씨나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인간에 대한 사랑 탓일 게다.

 

 

 

김수환 추기경은 오는 28일 팔순을 맞고, 9월 15일엔 그가 사제의 길로 들어선 지 꼭 50년이 된다.

 

 

 

그의 존재는 독재와 억압과 폭력 앞에 떨던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등불이었다. 1968년 천주교 서울대구장에 임명되고, 이듬해 47살의 젊은 나이로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첫 추기경이 된 그는 “명동성당이 국가 권력에 짓밟히면 항의할 우리가 성당보다 백 배, 천 배 소중한 인간이 침해당했을 때 왜 침묵해야 하느냐”며 인간존중의 기치를 들었다. 그의 이런 깃발은 유신독재와 신군부의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도 치과의사모녀살인사건의 피의자였던 이도행씨와 사형선고를 받은 파키스탄 노동자의 구명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인간 사랑의 실천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한양대에서 가진 특강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삶이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인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한국방송의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출연해선 “무슨 종교를 믿든 진실하게 인간을 사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며 “아무리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엄하다”며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실천을 천명했다.

 

 

 

가톨릭 신앙생활연구소는 `김수환 추기경 전집’ 18권을 9월까지 펴내고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추기경의 사진 화보집 발간을 준비중이다. 암투병 속에서도 추기경 전집 발간에 혼신해온 신치구 가톨릭 신앙생활연구소장이 팔순 잔치를 준비해왔으나 최근 김 추기경은 이를 사양했다.

 

 

 

이에 따라 그의 팔순 잔치는 전집 가운데 우선 9권이 출간되는 오는 27일 가톨릭대 혜화동 성신교정 안 대성당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로 대신할 예정이다.

 

 

 

한겨레신문 2001년 6월 8일 조연현 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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