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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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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07-01 ㅣ No.10088

신부들에게 여름은 그렇게 좋은 계절이 아닙니다. 무더운 날씨에 긴 수단은 정말로 커다란 짐이 아닐 수 없거든요. 물론 여름 수단이라고 얇은 수단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수단이 반팔도 아니고 또한 짧은 치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운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하루 중에 수단을 입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로 인해 생기는 땀으로 여름 수단은 금세 더러워지고 땀 냄새도 배이게 됩니다. 그래서 자주 세탁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 세탁을 자주 하지 않았지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좀 지저분해서? 물론 지저분한 것이 맞기는 하지만, 옷을 갈아입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것. 여름 수단이 딱 한 벌 뿐이라서 그렇습니다. 세탁을 맞기면 세탁되는 동안은 입을 수단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서 그리고 깨끗하게 입으려고 노력하지요.

사실 작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맞추러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맞추면 가을이 되어서나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름 다 지나서 여름 수단이 나오면 뭐합니까? 그래서 맞추지 않았습니다. 대신 올 봄에 여름 수단을 새롭게 맞추겠다는 결심을 한 채…….

그러나 이것저것 신경 쓰면서 살다보니 또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한 벌 뿐인 수단을 아껴서 깨끗하게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며칠 전에 알게 되었네요.

봄, 가을, 겨울에 입는 검은 수단은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면 시간이 걸리지만, 여름 수단은 물세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아침 미사 후에 물세탁을 하고 다림질 하면 다음 날 입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 깨끗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름 수단도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줄 알고 더럽게 지냈는데, 세탁이 간단하기에 이제는 깨끗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지요. 알려고만 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활했네요.

하긴 이러한 모습은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도 종종 드러나지요. 즉, 내 생각만 옳다는 어리석은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은 정작 누려야 할 것도 제대로 못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곤 하지요.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도에 주님께서는 “왜 겁을 먹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고 말씀하시면서 굳건한 믿음 안에 답이 있음을 이야기해주십니다. ‘나’라는 틀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이라는 틀에 갇혀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내 생각만 옳다는 어리석은 모습을 하나씩 버려야겠습니다.
                                                                                                                      - 빠다킹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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