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동성당 게시판

대희년의 은총을 받기 위한 제자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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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luv1004] 쪽지 캡슐

2000-03-09 ㅣ No.473

 

 

            

 

끝까지 읽어 주십시오.

은총의 말씀이 마음 속을 풍요로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창세 1.1-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겨우내 죽은 듯이 서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하느님의 봄기운이 휘돌아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군요.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하느님의 봄기운이 휘돌아 예쁜 새싹이 돋아 대희년의 은총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어둡고 캄캄한 당속에서 나무 뿌리와 씨앗들이 자기 몸을 터트리며 진통을 겪어야만 파릇파릇한 새싹을 돋게 할 수 있듯이, 우리들도 남모르는 진통 속에 아파하며 자신 안에 어둠이 무엇인지 성찰하여 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해 살아감으로써 대희년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베들레헴(빵의 집)의 빈 밀짚 위에 내려오신 예수님, 그분은 최후의 만찬 때 그처럼 빵이 되시길 원하셨고 미사를 지내도록 명하시고 지금도, 앞으로도, 세상 끝날 때까지 영성체로써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잘살려고 애쓰고 결심하면서도 습관적인 잘못에 떨어지는 연약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싶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빈 밀짚과 같은 우리들의 나약한 모습에서도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유혹: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습니다.(마태 4,3).

  우리들도 육체적인 고통을 겪을 때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여 원망과 불평으로 괴로워합니다. 이 어둠에, 이 아픔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혹하는 자의 유혹을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마태 4,4)하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하느님의 기운으로 육체적 아픔에 대한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운, 그것은 원망과 불평을 하기 보다 나보다 더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며 감사와 인내를 가지고 영성체를 통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고통을 느낄 때마다 그 아픈 곳에 싶자표를 그으면서 우리 한국 순교자들이 고문을 받을 때마다 바쳤던

"예수 마리아! 이 아픔을 받아 주소서"라는 화살 기도를 바쳐 봅시다. 이때 하느님의 기운이 그 아픔 위에 휘돌아 원망이나 불평의 유혹을 물리치고 대희년의 은총을 가득히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두 번째 유혹:"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마태 4,6).

  우리들 마음에는 자신을 자랑하고 그 누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 억울한 일이나 손해 보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집과 교만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따지면서 사랑이라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악마의 유혹에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마태 4,7)하시며 인정받고 싶은 그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떠보는 우리의 어두운 마음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 사랑이라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면서 이 기도를 실천합시다.

  "주님, 저를 주님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 금요일 오전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양 손목과 발목에 굵은 쇠못이 박혀 피를 흘리시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라고 화살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들은 용서를 청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가 하는 일이 잘한 일이라 생각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느님을 떠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자기 고통을 바쳐야 함을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희년에 전대사의 은총을 받기 위해, 십자가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바친 오른쪽 강도 성 디스마스를 상기합시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고통을 받을 때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라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루가 20, 40-42)라고 기도했던 그처럼 기도한다면, 우리들의 어두운 마음은 사라지고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고통을 받아들인 오른쪽 강도 성 디스마스에게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에 될 것이다"(루가 23,43)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낙원’이라는 제자리를 찾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받는 고통을 성 디스마스처럼 보속하는 마음으로, 특히 대희년 전대사를 청하며 우리가 기억하는 영혼들의 벌을 사해 주실 것을 생각하며 희생의 선물로 봉헌합시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번째 유혹:"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 9)라는 악마의 유호거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시며 재물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또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며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 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재물을 나누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부리면서 산다면, 우리들 마음에는 어둠이 덮여 나눔이라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욕심만 부리다가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는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시대 욥 성인은 부자였을 때나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병고에 시달릴 때나 항상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살았습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기 1,21).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알몸으로 돌아갈 때까지 하느님이 주신 재물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하느님이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으며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과 나누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들 때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라고 말입니다. 이런 칭찬을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요. 이야말로 나눔을 통해서 우리 삶의 제자리를 찾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대희년의 은총이 우리 마음에 가득히 내릴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이라는 어둠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 희생과 용서와 나눔이라는 열매를 맺어 사랑이라는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먼 옛날 하느님께서는 땅속에서 많은 씨앗과 뿌리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왜 우리들은 이처럼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 고생해야 합니까? 답답해서 죽겠어요." 이 소리를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그 씨앗들과 뿌리들은 땅 밖으로 불러내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그 씨앗들과 뿌리들은 예쁘게 피어난 꽃들과 탐스러운 열매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들이 생겨났는지를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너희들이 땅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가 열릴 수 있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씨앗들 중에 어떤 씨앗과 뿌리는 "하느님은 농담도 잘하셔!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쬐그만 씨앗이, 이처럼 쭈글쭈글 수염난 뿌리가 이렇게 예쁜 꽃과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요?" 하면서 땅속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땅속에 다시 들어간 씨앗들과 뿌리들은 답답하고 어두운 땅속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꽃들과 맛있고 탐스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우리들에게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고 있답니다. 이처럼 씨앗과 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 희생과 용서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듯이, 우리들도 삶의 어둠 속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의 기운속에 희생과 용서와 나눔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겪는 육체적인 아픔은 무엇입니까? 그 고통을 대희년의 축복을 받기 위한 희생으로 바칩시다. 아름다운 하늘나라를 주시기 위해 우리들에게 내리시는 육체적인 고통을 주님께 아름다운 선물로, 십자가 상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고통과 함께 매일매일 봉헌합시다.

  지금 이 시간 내가 겪고 있는 마음의 아픔은 무엇입니까? 억울한 일, 서운한 일들, 미움과 다툼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속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 용서와 사랑의 꽃과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루하루 우리들 가정 안에 화목하고 평화로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봅시다. 우리 주위에 영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찾아봅시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께 받은 것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어두운 삶은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아 사랑이라는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사랑이라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다 하더라고 회개와 희생의 삶을 살아갑시다.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어떤 희생과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갈까?’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합시다.

  그날그날 삶의 어둠이 덮칠 때 "주님! 도와 주세요! 예수님, 마리아님! 이 아픔을 받아 주세요!" 라는 짤막한 화살 기도를 바칩시다. 하루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 그 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님! 오늘 하루 모든 일을 받이 주십시오" 하면서 기도드린다면 주님 안에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 데살3,16)

 

임상무 베네딕토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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