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성당 게시판

매미에게서 배운 여름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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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령 [avis] 쪽지 캡슐

2000-07-17 ㅣ No.1734

성당 뜨락의 매미가 시끄럽다. 성모상 앞의 묵상이 어느덧 매미에 대한, 매미 소리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진다.

 뭉쳐진 큰 소리를 매미는 지니고 있었다.

한여름 한철을 이리 울고 사라져 버릴 매미. 이 소리 이전 매미의 존재엔 캄캄한 땅 속에서 칠년의 굼뱅이로보낸다는 매미에 지식을 더듬고서야  내 묵상은 시작되었다.

어느때 인가 여름 지친 햇살의 끝자락으로 소리도 겨워 팔딱팔딱 거리는 매미를 잡았다며 좋아하던 오빠의 기억도 떠오른다.

손바닥 위의 매미는 패잔병의 나락이 느껴졌었다. 그런 매미를 오빠는 배를 누르며 다시 한 번 울어 보라고 보챘던 기억도 생각났다.

매미소리의 묵상으로 부터 인간을 생각한다.세상에 움직이는 모든것이  하늘에서 아니 지어낸 것이 어디 있겠을까? 모두 하느님의 손끝으로 당신의 언어로 지어내셨을 일이다.물론  그것들을 다스리라는 권세를 인간에게 허락하셨지만 다스린다라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지......... 정말 겸손하고 진중하지 못하면 모두가 망해 버리는 것이 다스림의 위치가 아닐 듯 싶다.물론 하느님은 그러지 않게 우리들을 움직이시지만

사람들! 조그마한 모기의 수혈도 허락지 않고 길가의 벌레 한 마리도 소스라치게 놀라 죽이든가 없애버리곤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 먼저도 어제 큰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

공원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께서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초췌한 외모

오랜 노숙생활로 인한 부은 눈. 난 아무생각 없이 아저씨를 밀쳐 내었고 놀란 아저씨는 화가났던지 나에게 성질을 부렸다. 난 그 자리를 피하고 멀찌감찌 앉았는데 그 아저씨에 대한 내 행동! 그건 아니었다.

멀리서 보니 한무리의 노숙자에게  아저씨는 무언가를 사 가지고 가고 있었다.

난 그날 그 아저씨에게 사과를 했어야 옳을 일이다. 먼저 외모로 그 아저씨를 판단했고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용서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종일 그 아저씨에 대한 묵상으로 괴로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면 그 무슨 소용있으리오,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그 분의 가르침을 느끼면서 송구스러움은 더해왔다.

 

성당의 매미소리가 잠잠하다. 참 이상도 한것이 매미는 한꺼번에  울다 또 한꺼번에 쉼을

갖는다. 또다시 노숙자아저씨가 마음에 잡힌다. 그 아저씬 말을 걸고 싶어 했는데 매일 그렇게 벌레 취급을 받는 그에게 난 또 상처 하나만 더 안겨준듯 해 너무도 죄송하다.

그리고 예수님께 죄송하다. 그들을 보살피라고 잠시라도 친구가 되어달라고 날 보냈을 텐데.....

 

예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빗 방울이 돋는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매미는 처음 하늘의 경이로운 예찬을 잠시 쉴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인생도 이렇지 않을 까 이젠 울어야 할땐데 마구 회피하고만 있다.

그래도 감사한것은 이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시게 하고 다스리는 그분의 인내이다.

 

하느님 매미가 정말 풍요롭게 울고 있습니다. 저도 당신이 선사한 오늘 이시간을 풍요롭게 감사하고 찬양하길 원합니다. 절 좀 다스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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