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경직된 중년남성을 위한 처방전 펴낸 김정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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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09-06-18 ㅣ No.12167

 
행복해지려면 수시로 감탄하고 감사하세요
소통 부재로 인한 불안 마라톤·폭탄주에 매달려
엄숙·진지함 버리고 재미 통해 자유로움 느껴야
김정운 교수(48)는 겉으론 마냥 행복해보인다.
고려대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정년이 보장된 명지대 정교수다.
 
음대 교수인 아내와 귀여운 두 아들에 만년필 수집, 음악 감상 등 고상한 취미생활을 하는 데다 기업체 등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해 헬리콥터도 동원될 만큼 인기강사다.
전공도 여가학이어서 학교나 회사에서 '잘 놀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김 교수가 최근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은
<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는 도발적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동독 등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도 '재미와 행복'이라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저항했기 때문이며 개인이 재미있어야 관용적이 되어 전쟁, 폭력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수컷의 원형질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를 만나 의무와 책임만 있고 재미는 잃어버린 이 시대 남자들을 위한 처방전을 들었다.

 
 
재미를 존중하라

- 왜 중년 남성 심리에 관한 책을 썼나.

"남들이 보기엔 마냥 행복하고 수시로 잘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 삶조차 점점 재미없게 느껴져서다.
50이 가까워오니 이룰 수 있는 것도 뻔하고 난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다인가, 왜 허망한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연구해보니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중년남성 전체의 문제였다.
그래서 이유없는 불안과 뭔지 모를 생에 대한 고뇌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위한 책을
썼다."

- 한국 중년남성들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재미나 행복에 대한 거부와 저항감이다.
재미있으면 불안해하고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낀다.
무엇보다 사회에서는 재미가 너무 천대받는다.
사회에 만연한 근거없는 엄숙주의, 불필요한 진지함이 남성들에게 수시로 '웃지마라'
 '진지해져라'를 강요하며 행복까지 앗아간다.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제의 강의를 자주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설픈 교수,
웃기는 교수로 폄훼한다.
실력없이 말재주만 갖고 버티는 허접한 교수 취급을 한다.
 
난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전임강사로 독일학생들에게 비고츠키, 피아제, 프로이트를 독일말로 가르쳤다.
제대로 공부한 문화심리학자란 말이다.
그런데 잘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서 나를 3류 취급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렇게 진지함 과잉주의에 빠져 살다보니 한국남성은 모두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시달린다.
한국남자는 술 한잔 마시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가 된다.
국내정치는 물론 경제정책, 지구온난화에 이르기까지 세상 고민을 혼자 다 껴안고 해결하려 한다.
 
그런데 이 용감한 지구방위대가 정작 자신의 행복을 챙기라고 하면 하염없이 비겁해진다.
일주일 내내 그토록 열심히 일해놓고도 스테이크는커녕 순대국 한 그릇도 혼자 식당에 들어가 못먹는다.
남들이 사회적 부적응자로 볼까 두려운 까닭이다.
일상에서 사는 재미가 없으니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한다.
그런데 세상이 그리 쉽게 안 뒤집히니 폭탄주를 마시고 자기 위장만 뒤집어 버린다."

- 주로 CEO나 고급공무원 등 중년남성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그들의 문제점이 뭔가.

"소통 부재로 인한 문화적 퇴행현상이다.
요즘 중년남성들은 김혜수 같은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에 탐닉한다.
숱한 얘기를 해도 정작 자신의 얘기를 터놓고 하거나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아 가장 자신이 소통을 잘하던 어머니의 가슴을 찾듯 큰 가슴에 심취한다.
 
세상과 더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데 그것 가운데 중년남성들
사이에 최근 인기인 마라톤과 지병 수준이 된 폭탄주가 대표적이다.
 
재미있게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살을 맞닿는 스킨십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포르노에 탐닉하기도 한다.
그래서 퇴폐마사지, 성매매 등의 불법 유흥업이 판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 그토록 강조하는 재미의 정의가 뭔가.

"세계적으로도 '재미있니?'란 문장이 일상적 용어가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재미란 단어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지금 사용하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차원으로 얘기하는 재미의 사회적 구성을 가능케
한 조건은 주체의 성립이다.
 
신분, 계급이란 봉건적 아이덴티티로부터 자유로워진 독립적 개인으로서의 주체가
근대에 들어 등장하면서 재미는 비로소 개념적으로 구성됐다.
개인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재미의 기본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라

 
 
- 이제라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우선 순위를 재정비해야 한다.
지금 술마시는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늙어서까지 내 곁에 있어줄까.
술로 친해진 이들은 술이 끊기면 인연도 끊긴다.
 
사회생활을 위해 술마신다는 것도 핑계다.
사장, 장군, 고위공직자들이 늙으면 자폐증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자신에게 아부하던 이들이 직위가 끝나면서 아부도 대접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사한 직함을 가져도 폼잡으면서 지내는 시간은 고작 10여년이지만
은퇴 후엔 30~40년의 삶이 남아있으므로
그 시간을 위해 인생의 가치를 재정비해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한 재미, 가족과의 스킨십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 왜 한국 중년남성들은 골프나 룸살롱 등에 열광할까.

"이야기와 감탄사가 있기 때문이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다. 이야기다.
한국남성들이 술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네시간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골프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라는 것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이토록 많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상실한 중년들에게 골프만큼 공통의 화제를 만들어주는
일은 없다.
또 골프를 할 때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드라이버 한 번 치고 나면 터지는 "나이스샷!" "우와!" 등의 감탄사를 듣고 싶어 새벽부터 골프장을 향한다.
 
룸살롱을 비롯한 술집도 그렇다.
집에선 찬밥신세이지만 술집 여종업원들은 "오빠 멋있다!" "너무 잘 생겼어요" 등의
감탄사를 연발해주기 때문에 그 맛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간다.
 
예전엔 우리말에 지화자, 니나노, 얼쑤 등의 감탄사가 참 많았지만
이젠 감탄사조차 "죽인다!"란 살벌한 단어로 바뀌었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간단하다.
하루에 대체 몇번 감탄하는가다.
사회적 지위나 부의 여부와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출세해도, 돈이 많아도 하루종일 어떤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 골프장도 갈 수 없는 서민층 남성들은 어디서 감탄사를 찾아야 하나.

"매우 쉽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에 카네만 교수는 행복은 하루중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기분좋은 시간이 길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는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의식, 즉 리추얼(ritual)을 찾아야 한다.
매일 아침에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 아이와의 뽀뽀 등이 리추얼이다.
리추얼이 다양한 삶이 풍요롭고, 이 리추얼을 단순한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수시로 감탄하고 감사해야 한다.
 
나는 만년필을 수집해 아침마다 어떤 만년필을 들고 갈까 고민하고,
갓볶은 싱싱한 원두를 사와 내 손으로 직접 갈아 먹는다.
가끔 아들과 동네 약수터에도 간다.
이런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 삶을 구원한다.
사람들은 죽을 때도 더 많은 돈을 못번 게 아니라 더 재미있게 못 산 것을 후회한다."

                  - < 글 유인경·사진 남호진기자 > http://smile.kha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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