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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의 마감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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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ㅣ No.12153

 
 
 
 
 
 
 

아름다운 삶의 마감을 생각해보자. / 하석(2009. 4. 2)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왜 그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혹 그 이유가 노년기에는 무언가 기다려지는 것도 별로 없는데다, 세월의 흐름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기 때문은 아닐까? 60대 이후에는 대개가 직업에서 은퇴하면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부터는 서서히 신체의 노화현상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노인임을 자인하게 된다. 또 친구나 선배들 중에서 시달리고 있는 노환이나 죽음의 이별을 유의하여 직시하기도하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된다.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을 어서 정리해야겠다는 자성(自省)도 더 해보게 된다.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을 잊고 지내거나, 외면하려한다. 그래서 불의의 사고나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당황하여 큰 혼란과 공포에 빠져들게 됨을 보게 된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잘 받아드린다면 오히려 삶의 완성과 가치를 더 충실히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며, 평상시에는 안심입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의 문제는 죽은 다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순간 현실의 삶에 의미와 빛을 던지며 영향을 미치는, 삶의 가장 주요한 기본 과제인 것이다. 죽음의 어둠이 삶을 짓누르고 있다면, 삶은 그 어둠에 휩싸일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움 없이 잘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삶은 복되며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은 채 올바른 목적과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삶’은 준비된 죽음이라는 ‘아름다운 삶의 마감’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다.


노년을 맞고 보내는 사람들의 그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보면, 그분들의 삶이 어떤 유형으로 정리되어 나갈지를 대강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두 분 어른의 선종(善終:선한 삶으로 복된 죽음을 맞이함의 뜻) 모습을 통해서, ‘아름다운 죽음’에서 ‘아름다운 삶’을 느껴보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임종을 맞으면서, “나는 행복 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 하십시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하는데, 그분들의 평화로운 임종 모습이 그려진다. 비록 병고에 시달리시며 쇠진하셨지만, 마음과 영혼만은 두려움 없이 평화에 머무르시며,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마음속의 사랑과 함께 행복에 머무시고 계심이 느껴진다. 이러한 선종 모습은, 그분들의 생전 삶들이 어떠하였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잘 사셨기 때문에 죽음을 잘 맞이하실 수 있었고, 죽음을 잘 준비하셨기에 잘 사셨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생의 마지막 장(章)에서 노년 삶의 가치관을 잘 정리하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별 당황 없이 담담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글은 '해오름'지 4월호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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