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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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04-01 ㅣ No.560

사순 제5주일(다해. 2001. 4. 1)

                                                  제1독서 : 이사 43, 16 ∼ 21

                                                  제2독서 : 필립  3, 8 ∼ 14

                                                  복   음 : 요한  8, 1 ∼ 11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봄이구나 하면 눈이 내리고 왜 눈이 오지 하면 다시 따뜻해지고, 이제 4월이 되었으니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을 볼 수 있고 봄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습니다.

옛날에 무학제 너머에 아주 큰 못이 있어서 홍제동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청에 굴욕적인 패배를 하고 난 후 매년 일정한 수의 결혼하지 않은 여인들을 조공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청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조공으로 바쳐졌던 여인들을 조선에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정조개념이 강했던 그 당시의 조선의 지도층은 몸을 버린 여인이라고 하여 돌아오는 그들을 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조국이 힘이 없어서 그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기에 조정은 그들이 돌아오면서 홍제동에 있는 큰 못에서 몸을 씻고 돌아오면 청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깨끗한 몸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은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과거가 있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지만 못생긴 사람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용서하고 마음에 두지 않고 지내기는 힘듭니다.  용서한다고 하면서 정말로 마음을 비우고 처음의 모습으로 잘못한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사람은 무척이나 적습니다.  우리는 용서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불리해지면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무시하고 화내고 합니다.  우리의 용서의 마음은 어쩌면 그냥 마음에 묻어두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판결을 내려주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죄지은 여자에 대한 심판보다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심판을 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하느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떳떳하다고 내세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죄가 있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떠나간 후에 그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결코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과거의 죄를 들추어내어 따지고 응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무엇보다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지나간 잘못을 캐내고 따지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지나간 잘못의 수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고 캐묻고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용서하는 사랑만이 죄지은 사람을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빌론의 유배생활을 끝낸 유다인들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말씀입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죄로 인해서 나라를 빼앗겼으며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은 궁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해방이 되어 고국에 돌아간다 해도 희망이 없었으며 보이는 미래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심한 자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지나간 일을 생각지 말라"고 하시며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 두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들추지 않으십니다.  깨끗하게 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죄가 아무리 커도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더욱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용서가 우리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오늘 제2독서에서 필립비인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누구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남을 단죄하기 위해 돌을 들고 서 있는 우리를 보고 하느님은 우리의 죄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았으므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갖도록 용서할 수 있게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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