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10월10일 성 다니엘 사제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시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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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10-09 ㅣ No.1414

 

 

축일:10월 10일

성 다니엘 사제와 동료순교자

San Daniele e compagni Martiri a Ceuta

St.Daniel And His Companions

Daniele = Dio è il mio giudice, dall'ebraico(God is my judge, from the Hebrew)

1227년 순교

 

1219년 작은형제회는 독일, 프랑스, 헝가리, 스페인, 그리고 모로코로 새로운 선교단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모로코로 떠난 형제들은 1220년 1월 16일에 Marrakesch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여기에서 순교한 성 베라르도와 그의 동료들은 복음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였던 영웅적 작은형제들 중 첫 순교자들이다.

1220년 베라르도와 그 동료들의 순교에 감명을 받은 작은형제들은 순교의 빨마를 서로 얻으려고 하였다.

 

 

작은형제회 첫 순교자들(B. Licinio작) St.Berardus,St.Peter,St.Otto,St.Accursius,St.Adjutus

 

축일: 1월16일    

성 베라르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제 1 회( 세라핌적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

 

우리 사부 성프란치스코의 가장 큰 희망 중의 하나는 사라센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1212 년 사부님은 모로코에 선교사로 가기를 원했으나 병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1219 년 프란치스코는 비딸리스 형제를 봉사자로 하여 5명의 젊은 형제들을 파견하였다.

그들은 비딸리스 외에 성 베라르도, 베드로, 아꾸르시오, 아듀또, 오또 등이었다.

 

비딸리스 형제는 병이 나서 포르투갈에 잔류하고 다섯 형제들은 세빌랴를 거쳐 모로코에 도착하였다.

모로코는 사라센인들의 땅 중에서도 마호멧 교도들의 중심지나 진배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마호멧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설교하였다.

1220 년 초 투옥되어 심한 박해를 받고 1월16일 순교의 빨마를 얻게 되었다.

이들의 순교로써 형제회는 거룩한 창설자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 이미 피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교황 식스또 4 세는 1481년 그들의 중재로 일어난 많은 기적들을 인정하고 그들을 시성하였다.

*작은형제회에서 www.ofm.or.kr

(인창동성당게시판884번,1571번.)

 

 

St.Daniel And His Companions

체우타Ceuta의 순교자들 (+1227)

 

칼라브리아Calabria의 관구봉사자 다니엘Daniel은 1227년 6명의 동료들

(안젤로,사무엘,돔누스,레오,우골리노,니콜라오.Angelo, Samuele, Donnolo, Leone, Ugolino, Nicola)과  함께 북아프리카 선교를 떠났다.

 

그들은 체우타Ceuta에 당도하였는데, 그곳에서 장사를 하던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곳의 사라센인들에게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경고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이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복음을 위해 순교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며칠간의 고문 끝에 그들은 감옥 밖으로 끌려나와 참수를 당하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1517년 그들을 시성하였다.

이들의 순교사화는 Analecta Franciscana III권 613-616쪽에 나온다.

 

 

 

 

다니엘이 이끄는 선교단은 1227년 9월 20일에 모로코에 도착하여,

유럽 상인들이 거주하던 체우타 근교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월 2일 토요일에, 그들은 서로 고백성사를 받고, 서로의 발을 씻기면서, 기도로써 밤을 지내고,

일요일 아침에 체우타(Ceuta)로 들어가서, 길거리에 서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출현은 소란을 불러 일으켰고, 따라서 "카디" 앞에 끌려갔다.

그는 수도자들의 남루한 옷과 헝크러진 머리를 보고는 미쳤다고 판단하고 감옥에 가두었는데,

무어인들은 그들을 마음대로 놀리고 학대하였다.

 

다음 일요일, 다니엘 등이 자신들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선교사라고 항변하자,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을 강요하면서 갖은 고문을 자행하다가,

체우타의 성벽 밖에서 그들 모두를 참수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후일 스페인으로 모셔졌고, 1516년에 레오 10세가 이 순교자들의 축일을 거행토록 허락하였다.

 

 

 

 

 

♬시편 1편

 

 

 

 

 

 

 

 

 

 

 

 

 

 

 

 

 

 

 

 

 

 

 

 

 

 

 

 

San Daniele e compagni Martiri a Ceuta

10 ottobre

Nel 1227, sette Frati Minori (Daniele di Calabria, Angelo, Samuele, Donnolo, Leone, Nicola, Ugolino) partirono come missionari del Vangelo tra i maomettani. Giunti nel Marocco, cominciarono subito a predicare il nome di Cristo. Incarcerati e spinti con lusinghe e minacce ad abiurare la fede cristiana, resistettero da forti; furono perciò condannati alla decapitazione. I loro corpi pietosamente raccolti dai cristiani, furono sepolti a Ceuta. Leone X li annoverò tra i santi martiri.

 

Etimologia: Daniele = Dio è il mio giudice, dall’ebraico

Emblema: Palma

 

Sulle ultime vicende di questi missionari francescani, si possiedono due relazioni che dall’esame del testo sembrano contemporanee agli avvenimenti. Molti critici, però, non ritengono coeva la lettera di un certo Mariano da Genova che avrebbe scritto a frate Elia per informarlo sulla sorte gloriosa dei missionari. Questo documento non sarebbe stato composto pochi giorni dopo il martirio, come afferma il compilatore. bensi nel sec. XVI-XVII.

Sette francescani al principio del 1227 (dirigeva allora l’Ordine frate Elia) fecero vela dalla Toscana per la Spagna con l’intenzione di recarsi successivamente nel Marocco per convertire gli infedeli; erano gli anni dei grandi entusiasmi missionari del giovane Ordine Francescano. A capo del gruppo era Daniele, originario di Belvedere in Calabria e già provinciale della medesima regione, mentre gli altri si chiamavano Samuele, Angelo, Domno (o Donulo) di Montalcino, Leone, Niccolò di Sassoferrato e Ugolino. Dopo una breve permanenza in terra di Spagna, in due scaglioni a breve distanza l’uno dall’altro, si trasferirono a Ceuta nel Marocco. Era un atto veramente coraggioso, perché le autorità locali avevano proibito nella zona ogni forma di propaganda cristiana. Svolsero per qualche tempo un’attività presso i numerosi mercanti di Pisa, Genova e Marsiglia che risiedevano nella città, poi, ai primi dell’ottobre 1227, decisero di iniziare la predicazione in mezzo ai musulmani. Nelle strade di Ceuta, parlando in latino e in italiano (non conoscendo la lingua locale), annunziarono Cristo, bollando con roventi parole la religione di Maometto. Le autorità ordinarono la loro cattura: i missionari, dopo essere stati sottoposti a vari interrogatori, furono inviati ad abbracciare l’Islam e poi, di fronte alla loro mirabile costanza, vennero decapitati. I loro corpi furono straziati; tuttavia, i mercanti cristiani occidentali recuperarono i miseri resti e li seppellirono nei sobborghi di Ceuta. In seguito, le ossa furono trasferite in Spagna, ma Oggi non si sa con precisione ove siano venerate, quantunque città della Spagna, del Portogallo e dell’Italia vantino il possesso di qualche reliquia. Leone X, con decreto del 22 gennaio 1516, ne permise il culto per il 13 ottobre.

Autore: Gian Domenico Gor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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