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중국 여행을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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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ㅣ No.12074

중국 여행중 때때로 북간도 교회가 떠오른다. 사실 연길과 의란(흑룡강성)은 베네딕도15세에 의해 교황칙령으로 한국교회에 위임(경향잡지, 제16권 제498호, 1922.7,31)되었었기 때문이다.  ❰.... 근일에 로마부 교정관보를 봉독하건데 전교성성(傳敎聖省-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인류복음화성성)에서는 교황폐하의 칙령으로 , 지나 북만주 길림교구에서 연길도와 의란도 양도를 분활하여 조선 원산교구에 붙이셨다. 연길도는 길림성의 동편이고 의란도는 길림성의 동북편이며 이 두도의 면적은 대략 조선 13도만하다.❱이 지역을 우리는 보통 북간도라고 부르고 있다. 북간도가 원산교구의 관리로 넘어간 이유는 지리적으로 경성교구보다 원산교구가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북간도는 일제 강점기내 한국교회안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크기로 보아도 한반도 전체와 같았다.  그 당시 한반도내에서는 대단위 유량민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유량민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논의할 만큼 영향을 끼친 것이다. 1920년 후반기, 한반도의 인구는 대략 2천만명, 그중 서울의 인구는 38만명 정도였다. 한반도내 유량민은 지속적으로 북간도로 흘러 들어갔다는데, 대략 40만명으로 추정된다(1923년도 연보Ⅱ, p189), 유랑민 중에는 신자들도 적지 않았다. 대략 만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서울의 신자 수가 5만 천명(1921년도 연보Ⅱ, p165)이라고 보면 북간도의 신자수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민대주교는 북간도 사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즉시 용정시, 삼원봉, 조양하등에 본당을 설치하고 신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중 조양하 본당은 경기도 용인 출신의 최문식 신부님에 의하여 설립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최문식 신부님은 마적떼에 인질로 잡히여 한때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경성교구의 사목을 인수 받은 원산교구는 팔도구 및 푸진에 이르기 까지 본당 설립을 확장해 갔다. 교구의 크기는 신부들의 피정할 때 잘 들어난다. 교구 신부들이 교구청 원산에 모이는데, 그 풍경은 새삼스럽게 기억될 만하다. 피정을 위해 어떤이는 육로를 통하여 자동차편으로, 기차편으로, 배편으로, 더 나아가 마지막에는 말(馬)을 타고 본당에서 교구로 왕복하는데, 여행기간은 대략 3일에서 15일 걸렸다고 한다.

  연길의 웅생라처, 의란의 차무처 본당등 초기 한국교회의 활동 영역은 참으로 광활하였다. 원산교구는 1928년 연길과 의란 지역을 성장 시켜 고유한 교구로 분활 독립시키었다. 의란 지역은 1933년 카프친 수사들이 인수할 때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교구 독립의 필수 요건은 교구 단위 신학교 건립과 방인 사제 양성이다. 각 교구는 방인사제가 스스로 운영하도록 선교단체가 관활교구를 성장시키는 것이 로마교회의 기본 정신이다. 사실 연길과 의란 지역등은 방인사제 양성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여 방인사제 양성은 원산교구 덕원 신학교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덕원 신학교 출신 사제로서 우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49년 사제서품자로 연길 출신의 김남수 안젤로이다. 그 분은 수원교구장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되 돌아 보자. 한국교회의 발전의 근본 바탕은 무엇이었나....,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에 이어 1886년부터 이어지는 제2차 사제양성은 강도영, 최규하, 강성삼을 시작으로 1950년대까지 파리외방전교회와 베네딕도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써 가능하였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한국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한반도 전역과 연길 의란지역의 선교 내용은 대단하지만, 한국교회의 참여도는 거의 전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방인사제 양성이나 본당 설립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오딜리엔 수도원을 방문한일이 있다. 전처럼 오늘날에도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답변은 단호했다. 선교사도, 돈도 모두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제2차 전성기를 준비할 때이다. 최근 요한바오로2세도 한국교회에 극동 아시아 선교를 몇번이고 당부하셨다. 치체없이 길을 떠나야한다. 선교사를 파견할 뿐만아니라 방인사제 양성에도 최선을 다해 도와 주어야야 한다.

  어려운 이시기에도 불구하고 많은이들이 동참하고 있다. 중국선교를 담당하는 실무자로서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상계동 신자들에게도 금일봉 후원회 주심에 몇번이고 감사드릴 뿐이다. 중국 정부의 부유함과는 달리 어린 소신학교 학생들은 고구마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는 말씀도 꼭 전해주고 싶다. 머지않아 그들은 꼭 사제가 되어 당신들을 도와준 한국교회를 기도중에 기억하리라 믿는다. 감사합니다.

                         2009.4. 천주교 수원교구 중국성소후원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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