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뿌리가 나무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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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들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을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 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 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이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