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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입문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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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andrew1] 쪽지 캡슐

2005-03-30 ㅣ No.3

신부님, 안녕하세요.
신학과 4학년 김정일(안드레아)입니다.

 

저는 현재 이기락신부님께 예언서강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마침 예언서에 관련된 생각을 나누고자 신부님의 예언서게시판을 찾았으나
그 게시판 활용이 중단된 것 같아서 이곳에 글 올리는 점 이해하여 주십시오.


 

저는 예언서 입문과정을 보다가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구분짓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를 구분하는 첫번째 근거는
히브리어 성서를 따르는 유다교 성서분류법과
70인역 성서를 따랐던 초기 그리스도교 성서분류법에서 기인합니다.


두번째 근거는 내용적인 구분으로
유배 전과 후의 상황을 기술한 것으로 나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근거로 따지면
'예언'의 의미보다 '역사'의 의미가 더 부각되는 듯 하며
(역사적 교훈을 예언적 메시지와 동일시한다 하더라도)
첫 번째 근거로 보아도
여호수아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서를
'전기예언서'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예언'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게 합니다.
또한 이럴 경우, '역대기'는 덩그라니 남습니다.
(히브리성서처럼 커투빔으로 넘겨 버릴까요?)

 

이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의 구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서로 볼 것인가, 예언서로 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결과적으로 마틴노트처럼 4경을 주장할 수도 있고
아이스펠트처럼 6경을 주장할 수도 있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역사서'는 역사서로 보고
'예언서'는 예언서로 보자는 의견입니다.

 

'전기예언서'니 '후기예언서'니 하는 명칭도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히브리성서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어 성서를 따르는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혼동을 줍니다.

 

저는 여호수아~역대기를 '역사서'로
대예언서와 12소예언서만을 '예언서'로의
명확한 구분을 주장하면서
약간 비약해서 비유하자면....

 

우리가 왜 독도문제에 그렇게 비분강개합니까.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어떻게 구분짓느냐는
역사를 뒤흔들정도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구획'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성서상의 구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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