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옆집

인쇄

이선우 [andrea96] 쪽지 캡슐

2002-07-17 ㅣ No.407

 

오래간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운 시간.

제헌절 휴일의 텅빈 사무실에서의 한가함은

모처럼 느끼는 자유로움이다.

다들 뭐하고 지내시나.........

 

 

요즘 서울의 거대한 군락을 이룬 아파트단지에서

16년을 변함없이 옆에 붙어서 살아온 가구가 흔할까?

내가 거주하고 있는 16동 506호 옆 505호에

86년도부터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동네 친구(?)가 있다.

 

그 집에서 결혼하고 아이낳고 이제 피차간 흰머리가

희끗한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같이 붙어

살아갈것인양 잠재의식속의 가족구성원인양 늘 거기에

그 친구 가족이 또 늘 여기에 내가족이...

 

출근하다 만나고 휴일에 만나고 아파트앞 텃밭에 물주다 만나고

쓰레기 치우다 만나고 담배피다 만나고 이래 만나고 저래 얼굴을

맞대던 그 친구네가 이사를 간댄다.

 

16년이 하루 같이 서로에게 요란하지도 않고 극성스럽지도 않게

조용한 가족같이 지내던 그 친구의 눈치가 이상해진것을

눈치는 챘지마는...

 

차마 이사간다는 얘기를 주저하다가 우연히 상가 막걸리집

앞에서 만나게되자 그가 나의 시선을 피하며 무슨 죄지은 표정으로

 

"저 이사 갑니다."

 

축하하여야 할 일이었다.

그 좁은 아파트에서 노모님과 극성스런 아이들 셋과 부부가

부대끼며 살아옴을 늘 안타깝게 느끼고 왜 이사 안가고 그 좁은

집에서 고생하느냐고 술 한잔할때마다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엔, 이웃으로는 서로가 너무나 편한

이웃사촌이자 친구였고 그렇다고 호들갑스럽고 유난한 교류가

있는것도 아니면서 한편으로는 의지가 되는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축하한다는 말엔 기운이 빠져있음을 그도 알고있다.

 

"미안 합니다."

뭐가 미안 하다는건지...

 

허전했다.

 

물론 나도 여러가지 상황으로봐서 이사를 하긴 하여야겠는데

서로를 의지하며 버틴다는 핑계아닌 핑계거리도 이제

없어지려 하는 참이다.

 

집 사람에게 그 얘기를 건네니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웬지 허전하고 기분도 이상해져요"

너무 오랜동안 이웃해 산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마 이사 가는날 그녀는 눈물을 찍어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그러지 않아도 갈수록 이 좁은 아파트에 정을

떼려하는 아내의 눈속엔 우리도... 하는 말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담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허전한 맘에 당혹스러움까지 겹쳐지니 그동안

변화한다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무기력하게 살아온것 같이

느껴진다.

 

바보같이.....

 

후우~~



8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