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학당 (영상) 및 강의 (송천오 안드레아)신부님

3월 17일 쉐마학당 제 6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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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동성당 [shinchon] 쪽지 캡슐

2009-03-18 ㅣ No.11

‧ '소금인형과 바다'이야기에서 소금인형이 바다 자체라는 완전한 일치, 합일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불가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은 나 자신, 너, 이웃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 내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자신을 극복(초월)해 내는 상태이고 유기적으로 하느님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극복하고 정화해야 하는가?

① 우리 기억의 정화

② 우리 의지의 정화

③ 우리 이성적 능력의 정화

‧ 종교의 동기와 목적은 자신의 초월을 이루는 데 있다.

‧ 신학적 관심이 끌어낼 수 있는 네 가지 중에 첫 번째로,

하느님의 자비를 들 수 있다.

-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하다.

- 하느님의 나라는 어제, 오늘, 내일이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여야 한다.

- 우리는 유한한 존재지만 유한성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성을 갖고 무한성을 끌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산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경험할 수는 있다. 그것은 세 가지의 정화와 일치, 초월성을 통해서이다.

-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자기의식에 초점을 맞춰 기도하면 하느님의 자비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 요나는 1장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모르는 척 하여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성을 훼손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요나는 자비와 멀어지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순명의 가치를 의심한다.

- 하느님의 자비도 그 때가 있다. 하느님의 때는 바로 내가 죽거나, 최선을 다 했을 때, 나눔을 실천할 때다.

-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서(無化) 하느님의 때가 드러날 수 있게 해야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한층 풍성해진다.

- 하지만 자신을 무화시키는 것은 욕심, 자존심 등으로 하기 어렵지만 이것을 극복하게 되 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풍요로움, 하느님의 때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고 진정한 신앙인 으로 거듭날 수 있다.

-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드러난 우리의 헌신적인 삶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아름다 움이 있다.

- 하느님의 자비는 공동체의 회심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내 자신이 자유로워져야만 하느님의 자비를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다.

- 하느님의 자비를 삶 안에서 감지하고 살아야 참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 두 번째로 잘못된 신관(神觀)이다.

-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신관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교회에서 이탈하게 된다.

-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두절시키는 것은 잘못된 신관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자신의 것만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다.

- 요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 것은 요나의 잘못된 신관 때문이고 이를 통해 하느님과 단절을 체험하게 된다.

- 올바른 신관을 갖는다면 여유로워지고 차분하게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올 바른 신관은 내 자신 안에서 드러나는 신앙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 강의내용 정리 : 홍보분과 편집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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