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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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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나 [human] 쪽지 캡슐

2002-07-12 ㅣ No.18

수도원을 찾아] 6.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푸른 하늘 아래 하얀 수도원 성당이 성채처럼 눈부시다. 습기가 묻어나는 초여름 햇살을 뒤로하고 들어선 수도원 현관엔 서늘한 공기가 평화로운 침묵처럼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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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입구에서 응접실로 나를 안내해 주고 달콤한 사과차를 대접해 준 앳된 모습의 수사님은 두건이 달린 검고 긴 수도복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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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입고 있는 수도복은 불길이 모두 사그러든 뒤에 남은 검고 깊은 숯의 빛깔을 닮았다. 수고로이 다스려지고 버려지는 욕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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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의 눈빛은 검은 수도복 안에서 더욱 맑게 빛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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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에 위치한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의 작은 응접실 벽에 걸린 달력에 뚜렷하게 쓰여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기도하고 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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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그들의 단순한 삶을 가장 분명하게 특징 짓는 한마디이다. 오전 오후 두 차례 각자의 소임에 따라 일터에서 노동하고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으로 기도를 바치는 그들의 일과는 현대인들에게 힘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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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쳐있는 현 세대에 영과 육의 조화, 영적 생활과 노동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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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일차적으로 베네딕도 성인이 "자기 손으로 노동하여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들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며 그들은 일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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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의 떠남’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을 찾는 것’, ’하느님만을 위해 생활하는 것’이며 그들의 노동은 궁극적으로 기도 생활을 도와주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그들의 일은 그래서 더욱 순수한 면모를 지닐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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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공소 등 곳곳에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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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시오 수사님과 로무알도 수사님 두 분과 함께 둘러본 수도원의 일터에서 마주친 땀흘리는 모습들과,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일에 대한 그들의 단순한 몰입은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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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두 달 여만에 건조시키는 목재를 그곳 목공소에서는 2년에 걸쳐 자연 건조 시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뒤틀리지 않는 견고한 목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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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미디어를 맏고 계신 세바스챤 수사님은 대중적인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예술 영화를 비디오 테입으로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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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잉마르 베르히만, 에릭 로메르 같은 거장들의 작품과 어린이를 위한 비디오, 종교 비디오를 주로 제작하며, 그러한 작업들은 마치 혼탁하게 오염되어 가는 이 시대의 매체 미디어를 정화시켜주는 산소와도 같이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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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공예실에는 수 천장의 색유리가 빼곡이 꽂혀있었다. 색유리 안에 형성된 기포들은 햇빛을 굴절 시켜 빛과 색의 향연을 이루어내며, 수고를 기울여 골라낸 색색의 유리 조각들로 이루어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 안에 신비로운 기도의 분위기를 형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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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결국 땀 흘리는 노고를 통해 누군가의 영혼에 섬세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뭉클한 위로를 안겨 줄 수 있어야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그곳에선 명징한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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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내게 영적인 자양분을 풍성히 제공해 준 많은 책들을 만들어낸 분도 출판사를 둘러볼 땐 마치 은인의 집을 방문한 듯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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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수사님과 함께 그들의 양식을 손수 재배하는 작은 농장 곁의 오솔길을 따라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을 했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경쾌하고 풀냄새와 바람결이 유난히 향기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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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생활로 신앙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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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왜관수도원에선 금속 공예실, 가톨릭 조형예술 연구소, 월간 ’들숨날숨’을 통해 교회 문화.예술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 똑같은 일이라도 어떤 동기로 임하느냐에 따라 그 일의 질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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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획득하고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급자족을 위한 단순한 동기로, 타인들에게 그들의 사랑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사랑의 최종적 대상인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기도가 되고 찬미가 되는 그들의 일은 지극히 단순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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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는 지금부터 1천5백년 전 이탈리아 누르시아에서 태어난, 생전에 자신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았던 베네딕도 성인이 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수도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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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자들이 서울에 파견됨으로써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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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도회들의 경우는 흔히 그 회의 카리스마라고 표현하는 특별한 창설 목적이 있지만 베네딕도회는 일정한 장소에 정주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고행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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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추종하기 위해 사막이나 광야에 들어간 은수자들이나 독수자들의 삶의 전통을 잇는 ’수도승 생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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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있지만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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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변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모습, 즉 동(動)이 아닌 정(靜)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칠 때 찾아와 쉴 수 있는 산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영적 지원을 위해 그곳의 문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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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도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우려에, 그곳을 찾는 손님은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맞이하듯 환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는 수사님의 말과 미소가 내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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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영화.양서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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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버리고 진실된 사랑의 대상을 찾아가는 그들의 단순한 여정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한 장소에 몸을 묶고 정주하지만 그들은 유머를 잃지 않으며 그들의 영혼은 새처럼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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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 대상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은 단순하고 자유롭고 행복한가. 환대를 받고 떠나는 길에 쇠못 같은 물음표 하나 가슴 한복판에 묵직하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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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분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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