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프란치스코 축일 맞아

인쇄

현규환 [qhwan111] 쪽지 캡슐

2014-10-02 ㅣ No.515

프란치스코 성인 축을 맞아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아시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기사의 꿈을 안고 전투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그는 많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프란치스코는 다시 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중병에 걸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회복한 그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며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그들과 함께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를 설립하여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다섯 군데의 상처(오상)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러한 오상의 고통은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1226년에 선종한 그를 2년 뒤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루카 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묵상>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의 모습을 알려 주었습니다. 가난과 비천함을 스스로 선택하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빠졌을 때 체험하는 순수한 기쁨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헤세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성인에 대한 전기를 읽으며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움직였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이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성인에게서 우리가 향해야 하는 근원적 갈망을 봅니다. “우리가 진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엇을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우리를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노래하는 그곳이다. (중략) 하느님, 그토록 가난하신 하느님! 빛 속에서 빛이 지글거리고, 침묵이 침묵에 대고 속삭인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도 그처럼 침묵에 대고 말한다.

 

(중략) 그는 사랑에 빠져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에게 말을 한다. 오직 연인하고만 말한다.”

하느님은 가장 가난하시며 가장 높으신 분, 그러기에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작가는 그러한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프란치스코는 한 ‘어린아이’이자 ‘어릿광대’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한하신 하느님께서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이나 가난한 이들이 흘린 피, 소박한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만 머무르실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안에 하느님을 붙잡아 둔다. (중략) 하느님은, 아이들만 알며 어른들은 모르는 무엇이다.”

 

지금은 먼 이국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의 동창 신부가 언젠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토로하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를 가난한 자유로 초대합니다. 그 초대가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면 우리에게서도 그러한 갈망의 불꽃이 타오른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26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