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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주교 한국전쟁때 헤어진 '아들' 찾았다(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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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8-01-03 ㅣ No.7

서울대교구 총대리 김옥균 주교 한국전쟁때 헤어진 ‘아들’ 찾았다
 
50년만에 대자 박택서씨와 극적 상봉
 
 
‘주교님이 50년 만에 아들을 찾았다.’

서울대교구 김옥균 총대리 주교가 15일 집무실에서 50년전 헤어졌던 대자(代子)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반갑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보고 싶었던 대부님을 뵙게 돼 너무 기쁩니다.”
 
김 주교와 대자 박택서(67·다두·대전교구 금산본당)씨는 감격스러운 듯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김 주교와 박씨의 인연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학교 철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김 주교는 피란중에 우연히 충남 금산본당을 지나가게 됐다. 김 주교는 마침 금산본당에서 열린 세례식에서 우연히 17살 박택서씨의 대부를 서게 됐다.
 
“대부님과 함께 피란을 가다 느티나무 밑에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느티나무를 볼 때마다 대부님이 생각나더라구요.”
 
박씨가 피란 길에 헤어진 대부를 다시 찾고자 마음먹은 것은 올해 초. 대부가 누구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늘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부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교적에 대부의 성명이 ‘김바오로’라고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학생으로서 이름이 김바오로라면 제주교구장 김창렬 주교일 가능성이 높다”는 한 수도자의 말을 듣고 제주도까지 내려갔지만 허탕을 쳤다. 그곳에서 김창렬 주교로부터 “김옥균 주교도 바오로다”라는 말을 듣고 대부를 찾게 된 것이다.
 
“주위에서 돈독하게 지내는 대부 대자를 보면 늘 부러웠습니다. 이제 대부님을 만났으니 앞으로 대부님의 뜻대로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박씨는 “인삼의 고장인 금산에서 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대부님의 건강은 책임지겠다”며 인삼정과를 선물했다.
 
김 주교는 “대부로서 역할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며 “신자들이 우리의 만남을 보고 대부 대자의 인연을 새롭게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제608호(2000년 12월 24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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