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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옥균 주교 선종: 용인공원묘지 성직자묘역에 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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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옥균 주교 선종
용인공원묘지 성직자묘역에 안장
서울대교구 김옥균(바오로, 원로사목자) 주교가 1일 새벽 3시 3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5살. 교구는 1일 "김 주교 장례미사를 3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봉헌하며, 시신은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성직자묘역에 안장한다"고 밝혔다. 주교 장례를 3일장으로 하는 것은 자신의 장례절차를 사제들과 똑같이 소박하게 해달라는 생전 김 주교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김 주교는 선종 이틀 전인 2월 27일 아침 여의도 성모병원 원목부실장 전기석 신부에게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드린 후 "교회와 하느님, 나 자신에게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일생 동안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오전 11시 병실을 찾은 정진석 추기경의 기도와 축복에 "아멘"이라고 응답한 뒤 의식을 잃고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모병원측은 생전에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했던 김 주교 뜻에 따라 선종 직후인 오전 4시 고인의 각막을 적출하는 수술을 했다. 두 개의 각막은 모두 양호한 상태로, 두 사람에게 빛을 줄 수 있게 됐다.
1925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김 주교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과 프랑스 릴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54년 프랑스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59년 귀국한 김 주교는 교구장 비서 겸 가톨릭출판사 사장, 교구 상서국장, 종로ㆍ흑석동ㆍ당산동ㆍ노량진동ㆍ청파동ㆍ수유동본당 주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ㆍ관리국장 등을 역임한 뒤 1985년 주교로 서품됐다.
김 주교는 1984년부터 17년간 교구 총대리로서 교구 행정을 체계화하고 안정적 재정 운영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103위 시성식(1984년)과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년)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또 1989년부터 2001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이사장을 맡아 교회 매스컴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교구 신자들은 김 주교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 지하성당을 찾아 연도를 바치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서울대교구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신 김 주교님은 사제와 신자 한 명 한 명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신 인자한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2일 명동성당 지하성당에서 김옥균 주교 입관예절을 주례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7일, 남정률 기자, 사진=전대식 기자, 백영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