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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hain716] 쪽지 캡슐

2010-04-22 ㅣ No.217

한국평협 홈페이지 게시물 186 <‘속(俗)’을 ‘성(聖)’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에서

 

“‘과학’의 영역을 ‘신앙’의 영역으로 착각하는 등 스스로 무지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책무는 있다.

이번 의견서처럼 4대 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나 환경주의자만이 진정한 ‘가톨릭교회다움’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부나 주교가 있다면, 말을 보고 사슴이라고 하거나 고래를 보고 물고기라고 하는 어리석음에 비견될 만큼 신앙과 과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신 데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인간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가톨릭교회를 세우셨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셨고,

인간의 죄를 맺고 푸는 권한을 위임하셨다.(참조. 마태 16,16-20; 요한 20,22-23).

 

이 말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이르신다.

 

1. 하느님의 입김이 서린 영성은 인간의 윤리적인 완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 너희가 내 아들들에 대하여 나에게 물으려느냐?

내 손의 작품에 대하여 너희가 나에게 명령하려느냐?’”(이사 45,11).

 

“보십시오, 하느님은 당신 권능으로 숭고하신 분.

누가 그분 같은 스승이 될 수 있습니까?

누가 그분께 길을 지시하였으며

누가 ‘당신은 불의를 저질렀소.’ 하고 말하였습니까?”(욥기 36,22-23).

“네가 누구냐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사내답게 네 허리를 동여매어라.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내가 땅을 세울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그 치수를 정하였느냐? … 또 누가 그 위에 줄을 쳤느냐?

그 주춧돌은 어디에 박혔느냐? 또 누가 그 모퉁잇돌을 놓았느냐? …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

너는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고 심연의 밑바닥을 걸어 보았느냐?

죽음의 대문이 네게 드러난 적이 있으며 암흑의 대문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 또 어둠의 자리는 어디 있느냐?

네가 그것들을 제 영토로 데려갈 수 있느냐? 그것들의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느냐?

너는 눈 곳간에 들어간 적이 있으며 우박 곳간을 본 적이 있느냐? …

빛이 갈라지는 길은 어디 있느냐? 샛바람이 땅 위에서 흩어지는 그 길은?

누가 큰비를 위하여 수로를 깎아 텄으며 뇌성 번개를 위하여 길을 놓았느냐? …

인간이 없는 땅,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 비가 내리고 황폐하고 황량한 광야를 흠뻑 적시며

풀밭에 싹이 트게 하려고 누가 길을 놓았느냐? …

너는 묘성을 끈으로 묶을 수 있느냐? 또 오리온자리를 매단 밧줄을 풀 수 있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제시간에 이끌어 내고 큰곰자리를 그 아기별들과 함께 인도할 수 있느냐? 너는 하늘의 법칙들을 아느냐? …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내렸느냐? 또 누가 수탉에게 슬기를 주었느냐? …

너는 암사자에게 먹이를 사냥해 줄 수 있으며 힘센 사자의 식욕을 채워 줄 수 있느냐? …

누가 까마귀에게 먹이를 장만해 주느냐? …

너는 바위 산양이 해산하는 시간을 알며 사슴이 산고를 치르는 것을 살펴보았느냐?

누가 들나귀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느냐? …

너는 말이 메뚜기처럼 뛰게 할 수 있느냐?

네 슬기로 매가 날아오르고 남녘을 향해 그 날개를 펴느냐?

또 네 명령에 따라 독수리가 치솟고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느냐? …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욥기 38,1-40).

 

2. 선배 신앙인의 응답

하느님께서 세우신 “인류 구원의 보편 성사인 교회”의 가르침과 표양에

우리 평신도는 선배 신앙인인 욥처럼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욥기 40,4).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하느님에게 꼼짝없이 붙잡힌 예레미아 예언자는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예레 15,18).

 

이처럼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서 하시는 일이,

인간의 경우에 맞든지 맞지 않든지 간에

인간은 그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맹종을 뜻함이 아닌 영성이요 질서다.

 

결론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없어져 가고 있다.

1970년대 들어 정치 지도자들이 낙태 허용이라는 악법을 공공연하게 세울 때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만이 이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었다.

 

그 후 40년인 오늘에 이르러

2,100년이 되면 민족 반토막,

2,500년이 되면 민족 소멸을 논하고 있다.

반생명적 문화에 도취한 정치가들의 처사에 의한 결말이

민족 말살이라는 비극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그들 중에 누구 한 사람 책임질 사람이 없다.

 

인간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인

어머니인 교회만이 영원이라는 희망의 관점에서

생명과 환경을 논하고

생명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그 책임을 질 수 있다.

 

교회의 말씀 선포는 늘 정치의 잘못에 대한 단죄에 앞선다.

 

epilogue

천주교 신부들과 개신교 목사들이 축구로 친교를 나눈다.

목사가 볼을 신나게 몰다가도

신부가 막 대시를 해 오면

볼을 걍 놔둔 채 몸을 피하기가 일쑤다.

총각인 신부에게 한 대 걷어채일까봐서 겁나기 때문이다...^ㅎ^

 

주님께서는

성직자들의 인간적 성향에 따른 사목을 펼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걍...

 

“교우[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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