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차 세계 병자의 날 보도자료

개막연설(바라간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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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7-02-09 ㅣ No.21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영성적 사목적 돌봄
(개막 연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수도 서울에서 거행하는 올해 제15차 세계 병자의 날에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특사로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세계 병자의 날의 다양한 행사를 세심하게 준비해 주신 한국 주교회의와 한국의 모든 신자 여러분의 큰 노고와 따스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세계 병자의 날을 시작하며, 이 날이 전 세계, 특히 아시아와 한국에 있는 병자들의 선익을 위하여 좋은 결실을 맺는 은총 가득한 날이 되도록, 생명의 주님이시며 거룩한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시고 ‘병자의 나음’이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서 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아시다시피, 세계 병자의 날은 사흘에 걸친 행사들을 포함하는데, 올해는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영성적 사목적 돌봄에 관하여 성찰할 것입니다. 그 첫 날인 오늘은 학술과 신학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알아봅니다. 둘째 날인 내일은 이 난치병 환자들이 처한 사목 상황을 파악하고, 이 행사의 절정이 될 2월 11일 마지막 날 전례에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연구와 성찰을 봉헌할 것입니다.

 

저는 이 짧은 개막 연설에서 오늘 학술의 날을 위한 토대로서 우리 성찰의 준거가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몇 가지 핵심을 밝히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질병, 안락사, 공격적 치료, 고통 완화 치료, 사전 유언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모두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들이지만, 여기서는 시간 관계상 간략한 소개로 그치겠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제대로 말하려면 인류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생명, 고통, 죽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취하는 입장은 그가 갖고 있는 인간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올바른 사고방식으로 판단해 볼 때, 인간 생명은 인간의 존엄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인간은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성숙입니다. 죽음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시적인 한 단계가 끝나고 진정한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 날 진정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은 병을 알리는 증상이고 진단에 도움이 되므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만성적인 고통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본받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고통은 죽음이 다가오는 과정에 속하기 때문에 늘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결합시킬 때, 우리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께 결합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결합할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를 누리는 것입니다.

안락사는 고통을 없애려는 의도로 무고한 말기 환자의 생명을 멈추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모든 고의적인 행위나 부작위를 말합니다. 공격적 치료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고통만 연장시킬 뿐인 무익하거나 과도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수분과 영양분 공급은 공격적 치료에 속하지 않습니다. 고통 완화 치료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의 치료입니다. 이것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 덜어주는 것입니다. 사전 유언은 한 개인이 지상에서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과 관련하여 개인의 바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안락사는 살인 행위로서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공격적 치료도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통 완화 과정에서 환자가 무의식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해도 완화 치료는 언제나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 환자가 삶의 마지막 의무를 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통 완화 치료는 환자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죽음의 시간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전 유언은 안락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격적 치료를 피하는 도움으로 허용될 수 있습니다.

 

공격적 치료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말이 여러 용어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의미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는 과도하고 무익한 치료를 가리킵니다. 과도함과 무익함의 여부는 전적이지는 않다 해도 분명히 의학의 진보에 달려 있는 사안입니다. 문제는 ‘누가 그러한 과도함과 무익함을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환자와 의사와 가족, 그리고 생명윤리 위원회’가 그 답이 될 것입니다.

 

사전 유언에서 특별히 유의하여야 할 점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격적인 치료와 안락사를 혼돈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공격적인 치료는 무엇보다도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하거나 부적절한 치료를 적용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전 유언에서는 언제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유언을 변경할 수 있는 유언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치료의 무익함과 과도함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의학의 진보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사전 유언에는 ‘수탁인’이 있으며, 수탁인은 결코 안락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번 세계 병자의 날 동안 다루게 될 주제들의 기본 바탕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성사적 배려, 그들의 상태와 치료, 삶의 질, 윤리적 문제, 삶의 성화, 생명윤리에 대하여 다룰 것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환자들을 위한 연구와 사목과 기도를 위한 이 소중한 행사인 세계 병자의 날을 이렇게 시작하며, 아낌없는 성원을 보여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서울

2007년 2월 9일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의장 하비에르 로사노 바라간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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