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차 세계 병자의 날 보도자료

장엄미사 강론(바라간 추기경)

인쇄

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7-02-09 ㅣ No.23

장엄미사 강론
(서울, 2007.2.11.)

 

오늘 서울에서 거행하는 ‘제 15차 세계 병자의 날’에 제가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특사로 참석하게 된 것은 저에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분명 오늘 이 자리는 전 세계적인 행사이며, 특별히 이 행사가 아시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한국은 오늘 전 아시아를 대표해서 병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세계 병자의 날 행사의 주제를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사목적 돌봄’이라고 제안하였고,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흔쾌히 이 주제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병자의 날이 거행되는 삼일 동안, 난치병 환자들의 상황에 대해 성찰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늘 이 장엄미사에서 우리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함으로써, 그들이 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일치하도록 기도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에서 “고통 받는 이들, 특별히 가난 때문에 더 극심하게 고통 받는 이들에게 교회가 어떻게 눈을 돌려야 하는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시고, “난치병을 앓는 이들, 많은 경우 말기로 죽음을 앞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지금 우리 모두와 일치하여, 난치병에 걸린 이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우리의 증언을 통해 전해질 수 있도록 격려하십니다. 또한 여러 질병의 원인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사회 정책들을 통하여 난치병 환자와 말기 환자들이 지원 받는 것을 교회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강조하고 계십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가난 때문에 아무런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수많은 이들과 말기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보다 나은 보살핌을 받기를 바라시며, 환자들이 난치병을 견디어 내고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고통 완화를 위한 의료를 권장하십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교회 안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따라 난치병 환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이들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들이 계속해서 그 봉사를 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교회는 사제들과 사목 협력자들을 통하여 난치병 환자 곁에서 도움을 주면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가득한 자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담화문 끝에, 교황 성하께서는 “병자의 나음”이신 성모님께서 교회와 전 세계에서 난치병을 앓는 형제자매들을 복음적 정신으로 헌신하고 보살피는 사람들을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십니다.

 

죽음은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참으로 가까이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 앞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생명은 결국 본질적으로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것이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오늘날 세계 문화의 몇 가지 부정적 측면을 설명하시면서, ‘죽음의 문화’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현실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행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문화는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간주하고, 아울러 의학의 진보로도 죽음을 극복할 수 없기에 차라리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를 감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문화는 절대적으로 생명을 옹호하지만, 이는 오직 건강하고 결함 없는 생명만을 말하는 것이기에 모순이며, 또한 건강을 완벽한 행복을 위한 것으로 정의할 정도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을 생명과 동일시하기에, 그 또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화는 역설적으로 낙태에서 안락사까지 생명 자체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자세는 세속주의의 결과물로, 초월이라는 것이 없고 만약 초월이 없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소유해야 하고 지상에서 행복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행복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마치 죽지 않을 존재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되며, 다른 이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혼란을 겪지 않도록 죽음이라는 것이 늘 감추어져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면, 고통은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이 고통을 없애려고 온갖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해지고, 더 이상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에는 그들은 안락사를 선택하고 맙니다. 종종 사람들은 난치병 환자들이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무의미한 존재로, 즉 살 가치가 없는 존재로 생각하도록 여론을 몰아가곤 합니다. 또한 그들은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을 완고하고 종교적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적 행복, 능률과 생산성을 존재의 기본 ‘가치’로 보는 자신들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의 생명을 가치 그 자체로 생각하지 않고 ‘죽음의 문화’를 옹호하는 법률들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에 반대해서 교황 성하께서는, 고통 완화를 위한 의료를 높이 평가하면서,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따라 말기 환자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데 온 힘을 다하기를 권고하십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온갖 희생을 치르면서도 건강하게 잘 사는 것과 참된 행복을 혼동하는 그들의 태도와는 뚜렷이 구분됩니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과 질병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질병과 행복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질병과 행복은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말기에 처해 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고, 모든 생명 특별히 여러분의 생명이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으며,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고통에 일치된 여러분들의 고통은 교회와 세상에 필요한 결실을 맺게 해줄 것임을 믿으십시오.”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 결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기 위하여 죽음을 건너가셨습니다. 부활 안에 충만한 결실과 온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될 때, 부활 안에서도 그분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이 확고한 희망은, 죽음과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 곧 질병과 특별히 난치병을 앓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에게 평온함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이런 생명의 실재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평화와 행복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줍니다.

 

질병 안에서도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부어 주신 사랑의 결실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셨던 것처럼 그분과 함께 부활의 기쁨에 이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특별히 난치병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지상 삶의 마지막 단계이며,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찬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합니다.

 

교황 성하께서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를 마무리하면서 성모님께 청원하셨음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녀께서 병자들을 위로해 주시고, 고통 받는 이들의 영육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모든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기를 빕니다.” 가장 깊은 상처는 대부분 마음의 상처입니다. 이 세상은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 널리 퍼진 우울증처럼 많은 정신질환을 생각해 볼 때, 이는 희망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모든 난치병 환자들을 보살펴 주시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빛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전구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아멘.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의장 하비에르 로사노 바라간 추기경



18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