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

제7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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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7-01-29 ㅣ No.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7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1999년 2월 11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이번 1999년 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은 지금까지의 전통에 따라 중요한 성모 마리아 순례지에서 거행될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하여 베이루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하리사 성모 순례지를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순례지가 있는 나라 레바논은,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한 나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레바논은 자유의 메시지이며, 동서 문화가 공존하는 다원주의의 한 전형입니다”(1989년 9월 7일, 로마, 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 XII/2, 176면).

하리사 순례지에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상이 지중해 연안을 그윽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시러”(마태 4,23) 다니셨던 땅과 매우 가깝습니다. 고스마와 다미아노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도 가까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 주라.”(루가 9,2) 하신 그리스도의 분부를 받들어 그 일에 아낌없이 헌신하였기에 “돈 없는 의사 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분들은 병자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풀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1999년은 성부 하느님께 대한 더욱 깊은 묵상의 해가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째 편지에서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심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 신비에 대한 묵상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중의 실재를 통하여 사랑의 향주덕을 더욱 강화시켜 줄 것입니다.


2.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시대 제이천년기의 끝으로 다가서는 이 때, 가난한 사람들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은 복음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회개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이는 분명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완벽한 사랑의 전형”(「제삼천년기」, 54항)이신 성모님의 인도로 모든 사람이 더욱더 일치를 추구하여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게 할 것입니다(「제삼천년기」, 50-52항 참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사랑의 친교 안에서 모든 인간의 만남을 레바논보다 더 잘 상징할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레바논은 서로 다른 전통의 가톨릭 공동체들과 다양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레바논은 사람들의 “인간적 도덕적 성장을 위하여 공존과 공동 협력의 미래를 함께 일구어 나갈”(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레바논의 새 희망」, 93항) 일터로 아주 적합한 곳입니다.

레바논에서 거행될 세계 병자의 날은 세계 교회가 그 무엇보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밝히며 상호 연대를 촉구하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날은 성부 하느님을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사랑의 첫째 계명을 일깨워 주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을 제대로 지켰는지 셈을 하여야 합니다(마태 25,31-46 참조).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귀감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리켜 주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이해하는 열쇠입니다(루가 10,25-37 참조).


3. 그러므로, 오는 세계 병자의 날은 여러 그리스도 교회의 레바논 공동체들과 독실한 모슬렘의 순례지인 하리사 성모 순례지에서 묵상과 연구, 기도 모임을 통하여 사랑의 의무를 깊이 일깨우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일치의 요구는 “활동을 통한 일치 운동”으로 증대될 것입니다. 현재의 경험이 보여 주는 것처럼, 병자들과 고통받는 이들, 버림받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그 일은 가장 시급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치 운동입니다. 이 여정을 통하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한 일치”를 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종교간의 커다란 차이를 넘어” 맨 먼저 그들을 일치시켜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명확한 인간적 정신적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는”(「레바논의 새 희망」, 13-14항) 레바논과 같은 곳에서 종교간 대화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4.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원 가운데 건강과 구원의 간청보다 더 크고 강렬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보건 분야에서 촉진될 수 있고 또 촉진되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당연히 모든 차원의 인간 연대입니다. 따라서 “보건 시설들이 인류에게 더욱 큰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는 장소가 되도록 관심을 가지고 이들 시설의 보건 사업 조직을 진지하고 철저하게 연구할”(「레바논의 새 희망」, 102항)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응답은 무엇보다도 동정 어린 이해와 따뜻한 사랑, 영웅적인 경지에 이르는 헌신을 갈망하는 그들의 처지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성애의 신비에 대한 묵상이 병자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병자를 돌보는 사람들에게는 애정 어린 관심을 키워 주는 배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5. 모든 병자에게, 온갖 질병과 재난과 비극의 희생자들에게 저는 하느님 아버지의 따뜻한 품안에 안기도록 권유합니다. 생명은 아버지께서 숭고한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어떤 상황에서나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일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 선택의 목적이 때로는 흐릿하고 불확실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저자의 권유는 그러한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리게 버려 둘 리 없으리라”(시편 55,2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설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걱정합니까? 여러분을 지으신 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 그대로 있을 때,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분을 돌보아 주셨던 분께서 지금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신앙인이며 정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시고 의로운 자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리시는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미 신앙 안에서 의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을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시겠습니까? 오히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도와 주시며, 필요한 것을 주시고, 곤경에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여러분을 위로하시어 그 곤경을 견뎌 내게 하십니다. 여러분에게서 은혜를 거두시는 것은 여러분이 멸망하지 않도록 그분께서 여러분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지으신 분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창조주의 손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만드신 분의 손에서 떨어질 때 여러분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의가 창조주의 손 안에 머물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 그분께 여러분 자신을 맡겨 드리십시오. 허공으로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니, 여러분도 그분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저버리지 마십시오”(「시편 상해」, 39,26,27: CCL 38,445).


6. 인간 생명의 수호자이며 봉사자가 되도록 소명이나 직업으로 부름 받은 보건 의료인 여러분에게, 곧 의사, 약사, 간호사, 원목 사제, 수도자, 병원 운영자, 자원 봉사자 여러분에게 저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표양을 제시해 드립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한 최상의 증거로 성부께서 파견하신 그리스도(요한 3,16 참조)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으로 좋은 일을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가르치심으로써 “이 양면에서 고통의 의미를 완전히 계시해 주셨습니다”(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30항).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그 배움터에서 여러분은 사랑과 친절을 통하여 고통의 신비에 담긴 심오한 이치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목격하는 그 고통이 여러분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봉사하며 모든 사람의 협력을 받아들이십시오. “생명 문제, 생명의 보호와 증진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 생명이 신성하고 종교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가치는 결코 믿는 이들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01항). 고통받는 사람이 오로지 도움을 요청하듯이, 누구든 사랑의 응답으로 베푸는 도움을 받아들이십시오.


7. 저는 교회 공동체에 간곡히 요청합니다. 모든 교회 기관이 온전히 참여하여 성부의 해를 실천적인 사랑의 해, 자선 활동의 해로 삼으십시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생명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믿음은 시작이고 사랑은 끝입니다(PG, V, 651 참조). 모든 덕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나아가며 인간을 완덕으로 이끕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나름대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성서의 모든 면을 낱낱이 읽을 수도 없고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서를 펼쳐 볼 수도 없으며 성서의 모든 신비를 꿰뚫어볼 수 없다 할지라도, 사랑을 지니십시오. 모든 것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거기에서 배웠던 것만이 아니라 배울 수 없었던 것까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설교집」, 350, 2-3: PL 39,1534).

 

8. 이번 세계 병자의 날에 하리사의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의 숭고한 모범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셔 주시고, 병자들을 위한 봉사로 그리스도 신앙을 증언하는 모든 사람에게 힘을 북돋아 주시며, 어머니의 손으로 모든 사람을 지극히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집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레바논 사람들의 애끓는 고통을 굽어보시는 성모님께서 그 땅에 다시 피어난 희망을 통하여 사랑의 치유 능력에 대한 새로운 신뢰를 세상에 불어넣어 주시고, 잃어버린 자식 같은 그들을 모두 그러안으시어 당신의 옷자락으로 감싸 주시기를 빕니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새로운 천년기가 하느님 사랑의 숭고한 창조물인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신뢰의 시대를 열어, 모든 사람이 오로지 사랑 안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기를 빕니다.

 

 


바티칸에서

1998년 12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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